[Google번역] Drive – Spread Sheet 에서 이용하기…

스크린샷 2015-12-26 오후 11.47.08

 

캬….. 좋구나… 단어 사전 앱 만들때 짱짱 할 듯…

또 다른 곳에 어떤 이용 가치가 있을까?

점점 발전하는 구글  좋당. ㅋㅋㅋ

페이스북에서 보고 따라해 봤는데 된다. 좋다.

 

Wow! it’s so cool function…

I saw this function on facebook. and try this….

well.. Feel so good~ ^^*

[PDF합치기] smallpdf .. 급할때 좋네요.. 보안 이슈 없는 문서는 합쳐 보세요.

http://smallpdf.com/kr/merge-pdf

 

초초간단하네요… 파일 올리기만 하면 끝!!!

[추억의글타래] 몇년전에 썻던 글의 소스를 다시 찾다!! 아래아 한글편.

 최초의 한글 워드 프로세서

최초의 한글 워드 프로세서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주장이 있지만 1982년 서울북공업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박현철이 엘렉스 사장이었던 현재 삼보컴퓨터 회장 이용태 박사의 허락하에 방과 후 엘렉스 사무실에서 개발한 한글 워드 프로세서 버전 1.0이 최초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https://www.youtube.com/watch?v=pIepzD_cKe4) ::: 영상 30초 이후부터 관련내용 ::: 워드 프로세서에 구체적인 이름도 붙어 있지 않고 단지 버전 1.0이라고 부를 정도로 컴퓨터가 생소했던 시절에 고등학생이 컴퓨터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는 것 자체가 큰 뉴스거리였고(실제 1983년 1월 MBC 뉴스데스크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문교부는 고등학교에 컴퓨터 5000대가 무상으로 보급하여 학생들이 컴퓨터를 접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이 워드프로세서는 8비트 컴퓨터 애플 2 플러스에서 동작하였고, 지금은 당연히 컴퓨터에서 한글을 자유롭게 입력하고 표시할 수 있지만, 당시 컴퓨터에서는 한글이 아닌 영문으로 모든 것을 사용해야 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현재 사용하는 자판과 거의 동일한 배열을 사용하여 한글을 컴퓨터에 입력하고 표시하는 것은 물론 프린터에 출력까지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혼자 개발한 것이었다. 한글과컴퓨터가 1989년 발표한 HWP 1.0에 포함된 소개 문서에 보면 “1982년 고등학생이던 박현철씨가 개발한 한글 워드 프로세서가 있었고”라고 적혀 있다.

발전

한편 1983~4년경 캐나다 교포로 JAE Consultant라는 회사를 운영하는 정재열씨가 한글 III라는 제품을 발표 했다. 이는 시기적으로 뒤에 나온 것이지만 박현철이 개발한 제품 보다 기능적으로 우수했다. 이후 금성소프트웨어의 하나워드, 삼보컴퓨터의 보석글 등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1988년 정재열과 친구 사이로 알려져 있는 강태진이 한글 III를 토대로 최초의 한글 위지윅 워드 프로세서인 IBM-PC용 한글 2000을 개발했다.

○ 한글과 컴퓨터 역사
。Microsoft Word 프로그램이 전 세계 없는 곳이 없다. 단 한국에서만은 맥을 추지 못하는 것 으로 보인다. 한국… 그렇다. 전 세계적으로 이례적인 워드 독립 사태… 이는1990년 10월 9일 설립된 한글과 컴퓨터라는 회사덕분에 가능하였다.

 (주)한글과컴퓨터는 『한글』워드프로세서라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이다. 한글과 컴퓨터의 이찬진사장은 1989년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사업에 뛰어들어 현재 한국의 소프트웨어 업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다양한 제휴 관계를 통해 아군을 늘려 나가고 긴밀한 협조 체제를통해서 경쟁력을 키워 나가는 것, 이것이 우리의 경쟁 상대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싸우는 기본전 략입니다.”
이 회사는 1990년 10월 5명으로 시작하여 93년 103억원, 94년 151억원의 매출액을 달성했으며 종합 소프트웨어 회사로 성장하려 하고 있다.

1989.4 한글 1.01 1998.12 한글L97(매킨토시용)
1991.1 한글 1.52 1999.5 한글R4(리눅스)
1992.7 한글 2.0 1999.5 한글97기능화판
1993.9 한글 2.1 2000.5 한글 for Netffice
1994.6 한글2.5 2000.7 한컴워드R5(리눅스)
1995.6 한글x1.0(유닉스용) 2000.8 어린이 한글
1995.6 한글x3.0(유닉스용) 2000.10 한컴워디안(한컴오프스V)
1995.6 한글3.0(도스용) 2001.10 한글2002(한컴오피스2003)
1995.10 한글3.0b(윈도우용) 2002.4 문걸2002(중국어판)
1996.8 한글프로96(오피스) 2002.7 넷한글
1996.11 한글96international 2002.8 한글2002SE
1997.4 한글일본판 2003.10 한글2004(한컴오피스2004)
1997.9 한글97(한컴홈/한컴오피스) 2004.11 한글2005(한컴오피스2005)
1998.2 Free한글
1998.7 한글96(매킨토시용)
1998.8 한글815특별판

1990.10.9. (주)한글과컴 퓨터 설립 – 서울시 종로구 와룡동 95번지
1991. 9. 회사 이전 – 서울 시 강동구 성내 2동 136-2번지
1991. 11.3. 소식지 (newsletter) [한글과컴퓨터 소식] 창간호 발행
1992. 5.23. 과학기술처 인정 기업부설연구소로 선정
1992. 11.10. 과학기술처 인정 병역특례 연구기관으로 선정
1992. 12.5. 출판사 등록(명칭 도서출판 한글과컴퓨터)
1993. 1.8. 제호 변경 [한글 마을]
1993. 6. 월간지 [한글과컴퓨터] 창간
1993. 9. 회사이전 – 서울시 동작구 신대방 2동 349-24
1993. 10.9. 제1회 한/글/ 큰잔치 개최(3일간)
1993. 12.31. ’93 매출 103억 원 달성
1994. 1.19. 지오시스템 (Geo System) 인수, 소프트라인의 제품 [프린트마당] 인수
1994. 3.17. 창인시스템과 제휴
1994. 3. 용산 서비스센터 설립
1994. 6. 미국지사 [한글과컴퓨터․ USA] 설립
1994. 7. (주)한컴플러스 설립
1994. 10.8. 한국외환은행의 유망중소기업에 선정
1994. 10.9. 제2회 한/글/ 큰잔치 개최(3일간)

{한컴 비전 2000} 발표

1994. 11.29. 서울정도 600년 기념 타임캡슐에 한글 2.5 수장
1994. 12.1. 산학연 협동 중소기업부문 최우수 기업상 수상
1994. 12.31. ’94 매출 152억원 달성
1995. 1.6. 조직개편(9개 부서) – 사업부제로 개편
1995. 1.9. 나라소프트 합병
1995. 1.17. 한마이크로시스템즈 합병
1995. 2.7. [(주)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 설립 후원
1995. 3.20. 지방 AS 센터 설립(부산, 대전, 대구, 광주)
1995. 4.12. 제13회 [벤처기업대상] 과기처장관상(대상) 수상
1995. 5.27. 회사이전 –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7가 94-46
1995. 10.12. 95 뉴미디어대상 企業大賞(전문기업부문) 수상
1995. 10.27. 제3회 한/글/ 큰잔치 개최(3일간) – 전국에서 개최
1995. 10.31. 일간스포츠 선정 [’95년 올해의 빅히트상품]

           소프트웨어 부문에 도스용 한글  3.0 선정

1995. 11.1. 조직개편, 별도법인 2개 설립 (주)한컴퓨터서비스, (주)한글과컴퓨터프레스
1995. 11.3. 스포츠서울 선정 [’95히트상품] 컴퓨터 소프트웨어부문에 한글3.0b 선정
1995. 12.7. 한국정보산업연합회 주최 [95년 新소프트웨어商品大賞] 수상 – 한글 3.0 b
1995. 12.7. 중앙일보 선정 ’95 10대 히트상품 소프트부문에 한글 3.0b 선정
1996. 5.10 한국신기술인증 마크 획득 – HNC Library
1996. 5.23. IR 52 장영실상 수상 – 한글3.0b

::: 한글과컴퓨터 (아래아 한글)의 역사 :::

이글에 대한 에피소드 (내가 만든 자료를 날렸다. 인터넷의 무서움. 누가 내것을 그대로 퍼갔다. 내가 그걸 다시 퍼왔다. DDADDAJOO.COM.NE.KR 시절 사이트였다. 감사한 무명의 1인..)

89년 1.0, 1.2, 1.3 출시

서울대를 졸업한 이찬진 씨는 알고 지내던 프로그래머 세 명(정내권, 우원식, 김형집)을 모아 한/글이라는 새로운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해 베타버전인 0.9판을 89년도 초반에 출시한다. 물론 이때의 베타버전은 소규모로 지인들에게 배포되었다고 하고(참고로 우리나라 컴퓨터 관련의 산 역사라 할 수 있는 메카인 청계천에 뿌려 졌다고 한다. 반응 좋았음. 그래서 이곳에서 사업성을 확인함. 테스트 용.), 최초의 상용버전인 1.0판이 1989년 4월 출시되면서 한/글은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5.25인치 2D (360KB)디스켓 3장의 용량으로 만들어진 한/글 1.0판은 용산 전자상가의 소규모 유통업체인 러브리컴퓨터 라는 회사를 통해 10만원의 가격으로 출시되었다. 물론 상용버전인 만큼 매뉴얼도 들어있었지만, 이때는 대량생산을 하지못해 링형 바인더로 묶여진 매뉴얼을 제공하는 등 매우 조악한 패키지 구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때 당시에는 외국산 워드프로세서를 한글화한 프로그램들만이 존재 하였던 것이 현실이었기 때문에 이는 정말 획기적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사건 중 사건이었다.

이렇게 출발하게 된 한/글은 이찬진, 정내권, 우원식, 김형집에 의해 만들어 졌다. 세 명이 프로그래머이고 이찬진씨가 실질적인 경영을 맡았다고 한다.


< 아쉽지만 아직 이전 버전의 플그림은 구하지 못했다.>

한글과컴퓨터라는 회사 이름을 달기 전에, 한/글의 1.2판, 1.3판이 출시된다. 주로 각주 등 편집, 인쇄 기능이 많이 향상되었다. 당시에 판매되던 한/글은 출력할 수 있는 해상도의 조건에 따라 레이저판, 도트판이 따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300DPI의 출력물을 찍어낼 수 있는 레이저판은 27만원, 180DPI의 출력물을 찍어낼 수 있는 도트판은 9만원의 가격으로 판매했다. 그리고 레이저판에는 불법복제를 막기위해 프린터포트에 꽃아야만 프로그램이 동작하는 하드웨어 키가 들어있었다.

91년 1.5 출시

91년 1월에 드디어 크게 성공한 상용제품인 1.5판이 출시된다. 가격은 이전과 동일하였으며 도트판과 레이저판의 두 종류로 나뉘어져 발매되었다. 이 때 이찬진씨가 한글과컴퓨터라는 회사를 열었으며, 한글문화원 사무실 내부에 4평짜리, 5000만원으로 설립된 회사가 자리를 잡으면서 본격적으로 외부 직원들을 영입하기 시작한다. 

도트판의 경우 2D 디스켓 다섯장으로 이뤄져 있었으며 당시 컴퓨터들이 하드디스크가 없는 제품들이 대부분이라 한자사전을 쓰기위해 디스켓을 바꿔끼우고, 인쇄를 하기위해 디스켓을 바꿔끼우는 식으로 아주 불편하게 워드를 사용해야 했다고 한다. 

당시의 한/글 1.5판은 지금의 워드프로세서와 비교하면 기초적인 수준의 기능이 들어있었다. 파란바탕화면에 고정된 글자크기(기본, 혹은 가로세로 2배확대)만이 입력가능했고, 기본적인 정렬기능, 선그리기를 이용한 표그리기 기능 정도만이 가능했다. 글꼴은 명조, 고딕, 필기, 샘물의 4가지 한/글 글꼴만이 들어있었다. 현재 Windows에 기본으로 제공중인 워드패드만도 못한 기능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때 이미 한/글은 옛한글, 외국어를 포함해 완성형 코드로 표현 불가능한 11172자의 한글을 모두 표현할 수 있었으며, 두벌식 글판뿐 아니라 세벌식390 글판도 지원하는 등 한글 입력시스템은 이미 거의 완성단계에 접어들어 있었다.

 


그리고, 몇가지 버그를 수정한 한/글 1.52판으로 이미 최고의 한글 워드프로세서라는 평을 받은 한글과컴퓨터는 제품의 성공으로 얻은 자금과 인력을 통해 기존 버전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능을 갖춘 당시로서는 외국의 워드프로세서보다도 뛰어난 기능의 한/글 2.0을 92년 7월 발매하게 된다.

92년 2.0 출시

한/글 2.0은 레이저판과 도트판의 구분을 버리고, 일반용과 전문가용이라는 구분을 달고 출시된다. 가격은 예전과 동일하게 일반용은 9만원, 전문가용은 27만원이었지만 1.52 레이저판의 모든 기능을 2.0 일반판에서 구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격은 1/3으로 내린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글 2.0가 한/글 1.52와 비교해서 달라진 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번째로는 가로/세로 두배확대만 가능했던 글자크기 조정기능이 1포인트~127포인트까지의 가변크기 조정기능으로 업그레이드 되었다. 이 기능은 전문가용에서 최초로 도입한 윤곽선 글꼴 기능과 맞물려서 당시 한/글 1.52버전을 사용하던 사람들에게 충격으로 받아들여 졌는데, 127포인트로 화면에 가득차게 확대를 해도 깨지지 않는 글꼴을 본 많은 사람들을 많이 놀라워했다고 한다. 또한 컬러인쇄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초로 표편집 기능, 다단편집 기능과 문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틀(글상자, 그림 등)을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 생겨났고, 컴퓨터 프로그램 최초의 한글 맞춤법 검사기능을 탑재, 띄어쓰기 오류등을 정확하게 지적해주기 시작했다. 또한 하이퍼텍스트 방식의 도움말을 탑재하고 있었다. 

이런 획기적인 기능을 추가한 2.0버전의 출시로 한글과컴퓨터의 명성은 더욱 오르기 시작하고, 소프트웨어 업계의 최고의 스타로서 한글과컴퓨터가 자리잡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기능들의 추가로 인해 디스켓의 장수도 이전버전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어났다. 물론 하드디스크가 없이는 사용할 수 없었고 전문가용 버전이 XT컴퓨터에서 돌아가지 않는 바람에 업그레이드 수요도 부추겼다. 

이 때부터 묵향 등 한/글용 외부 글꼴패키지가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인기를 끌게된다. 한/글의 성공으로 인해 한/글 글꼴 시장에도 활기를 띄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이다. 하나워드나 보석글과 비슷한 타자기 수준의 품질로 전자출판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던 한/글 옛버전과 비교했을 때, 매킨토시에서만 가능할 줄 알았던 한글 전자출판이 한/글 2.0으로 인해 IBM PC에서도 가능하게 된 것을 생각하면, 한/글 2.0은 한글의 기계화에 역사적인 공헌을 한 첫번째 작품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이 후에는 더 이상 한/글의 독주를 저지할만한 경쟁자가 나타나지 않게 된다.

93년 2.1 출시

 


93년 9월 한/글 2.1버전이 출시된다. 한/글 2.0과 비교했을 때 큰 차이는 없지만 글꼴을 그리는 알고리즘이 개선되어 인쇄된 문서가 좀 더 깔끔한 결과를 보여준다는 장점이 있었고, 프로그램상의 한계로 인해 존재했던 편집 매수 제한이 500쪽으로 늘어나면서 책 한권을 너끈히 찍어낼 수 있는 전자출판 프로그램으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리고 모아찍기, 나눠찍기 등의 인쇄기능이 새로 추가되었고, 포스트스크립트 호환 영문글꼴 등 휴먼컴퓨터사의 글꼴이 추가되기도 했다. 전문가용 버전은 처음으로 32비트 버전으로 출시되었다. 이외에도 세세한 개선점들이 많았다. 

멀티미디어와 윈도 환경의 보편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한글 윈도우즈 3.1을 내놓으면서 멀티미디어 PC/홈 PC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퍼져나가게 된다. 사운드카드에서는 사운드 블라스터 16, 옥소리 WS16 등을 시작으로 음악시디 수준의 녹음/재생이 가능한 제품이 출시되었으며, 비디오카드로는 ET4000, ATI 마하64 등 동영상 가속과 6만컬러 이상의 동시출력이 가능한 비디오카드가 출시 되었고, CD-ROM이라는 대용량의 A/V 데이터를 담을 수 있는 미디어와 2배속 드라이브가 등장하였고, 이를 받쳐줄 한글 윈도 3.1 이라는 운영체제가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멀티미디어 환경을 컴퓨터에서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멀티미디어 PC의 등장, 그리고 그에 따른 윈도 3.1의 대대적인 보급이 한/글의 미래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글이 갓 2.1판을 출시하고 도스용 2.5판 개발에 들어갔을 즈음 한글 윈도에서 동작하는, 윈도우즈의 장점을 한껏 살린 여러가지 한글 워드프로세서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한메소프트의 파피루스, 금성소프트의 윈워드, 마이크로소프트의 한글워드 5.0, 삼성전자의 훈민정음, 핸디소프트의 아리랑, 휴먼컴퓨터의 글사랑 등이 등장하면서 윈도용 워드프로세서는 한/글 3.0b 윈도용이 등장하기까지 춘추전국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다른 업체들은 이미 윈도 3.1용 워드프로세서를 내놓고, 한/글에서 불가능한 멀티태스킹, OLE등의 다른 프로그램에서 만든 개체의 삽입 수정, 3차원 글꼴다듬기(글맵시/워드아트), 윈도용 트루타입 글꼴 호환, 9개 까지의 다중 문서편집(한/글은 그때까지 2개의 문서만 동시에 열수 있었음.) 등을 장점으로 내세우며 나름대로의 시장을 차지하고 있을 즈음, 한글과컴퓨터는 여전히 도스용 워드프로세서인 한/글 2.5를 개발하면서 시간을 천천히 끌어간다. 물론 윈도용 한/글도 동시에 개발하고 있다고 밝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속도나 안정성 측면에서 부족하고 보급이 더딘 윈도 3.1용 워드프로세서의 개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는 않는 모습을 보인다. 한/글 때문에 한국의 윈도 보급이 다른 나라보다 더 느려졌다는 이야기가 있을정도로 당시 워드프로세서 시장에서 한/글의 힘은 강력했다.

94년 2.5 발표

그렇게 한글과컴퓨터가 끊임없는 버전업과 많은 프린터 드라이버와 글꼴을 개발해 나가는 도중에, 94년 SEK 전시회가 열리게 되고, 한글과컴퓨터는 그 행사에서 한/글 2.5를 발표 하게 된다. 당시 한/글을 홍보했던 SEK 전시회의 한글과컴퓨터 부스의 크기는 마이크로소프트같은 대형 업체에도 뒤지지 않을만큼 엄청났었고, 전시회의 프로그램 내용이나, 행사의 질에 있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기서 한글과컴퓨터는 한컴비젼 2000을 선언하였다.

한/글 2.5는 덧실행이라는 이름으로 애드온프로그램을 지원함으로써, 다양한 유틸리티들을 한/글 실행 도중에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지원했으며(물론 멀티태스킹은 지원하지 않았음), 다른 프로그램 개발 업체에도 관련 제작툴을 공개하면서 작게나마 통합플랫폼을 지향하기도 했다. 

또한 2.1 전문용을 업그레이드 한 2.5 기본판이 12만원이라는 가격으로 매겨지면서 가격을 50%가 넘게 인하하였다. 대신 확장팩을 출시하였는데 국내 최초의 중형 영한전자사전인 프라임영한사전, 신명시스템, 태시스템의 추가 글꼴 등을 15만원의 가격에 판매하였다. 또한 최초로 시디롬 버전을 추가 판매하기도 하였다. 이외에도 마우스를 본격적으로 지원하고 글꼴 변경시 변경 내용을 미리 확인할 수 있는 등 여러가지 작은 개선점들이 많이 있었다. 또한 윈도우즈로의 업그레이드를 고려하는 사용자들을 위해 한/글 2.5 구입자들에게는 윈도용 한/글 3.0 무료 교환쿠폰이 제공되었다. 또한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 타임캡슐에 한/글 2.5가 포함되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다. 

한/글은 2.0 버전 이후부터 미국의 워드퍼펙트이라는 워드프로세서를 많이 참조하였다고하는데 기능의 구현이나, 조판방식 등에 있어서 많은 유사점이 있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가 있기 전까지 미국에서 최고의 워드프로세서였던 워드퍼펙과의 전락적 제휴를 통해 만들어진 윈도용 한/글 3.0이 몇 달 뒤 출시된다.

95년 3.0 발표

한/글 3.0판 윈도용이 95년 3월 출시되었다. 윈도용 한/글의 첫 출시는 윈도 95 출시와 함께 그 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다. 윈도용 한/글은 지금까지 등장했던 다른 윈도용 한글 워드프로세서와는 달리, 운영체제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 인터페이스, 독립 입출력 방식을 채택하였다. 윈도용 한/글 3.0은 윈도 3.1의 기본 프로그램 모양를 따르지 않고, 넥스트스텝과 윈도 95의 인터페이스를 혼합한 형태의 프로그램 모양을 선보였다. 한/글 1.0 버전부터 거의 변하지 않았던 구닥다리 인터페이스를 기억하는 많은 사용자들은 한/글의 변신에 매우 놀라워했다. 

또한 완성형 한글 코드만을 지원하는 윈도 3.1의 입력체계를 사용하지 않고, 도스용 한/글의 입력체계를 그대로 이식함으로써, 11,172자 현대 한글은 물론 옛한글까지 전부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예전부터 조합형 한글 체계를 통한 한글의 완전한 표현을 장점으로 내세웠던 한/글이니 만큼 당연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기존 도스용 한/글의 글꼴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단축키도 도스용 한/글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서, 도스용 한/글에 익숙한 사용자들이 손쉽게 한/글을 익힐 수 있도록 하였다. 물론 기존 도스용 한/글의 문서를 아무런 손상없이 그대로 읽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이렇게 기존 도스용 한/글의 커널을 그대로 윈도용으로 컨버전한 한/글 3.0은 도스용 한/글의 장점 위에 멀티태스킹, OLE 기능, 윈도용 글꼴 및 프린터 드라이버 지원, 글맵시 기능 등 윈도용 워드프로세서로서 꼭 필요한 기능들을 추가함으로서 빠른 속도로 도스용 한/글 사용자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글 3.0에는 버그가 굉장히 많았다. 이는 32비트 코드로 작성된 한/글 3.0이 16비트 운영체제인 윈도 3.1에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Win32s 런타임이 불안정 했기 때문으로, 패치 버전인 한/글 3.0a에서는 어느정도 문제가 해결 되었지만 윈도 95가 출시되기 이전까지는 많은 불만의 대상이 되었다. 가격은 기본팩이 12만원으로 책정되어 2.5와 동일했으며, 2.5의 확장팩 내용을 담은 추가CD가 4만원의 가격으로 추가 인하되었다.

마지막 도스용 한/글 발표

그리고 도스용 한/글의 마지막 버전인 한/글 3.0 도스용이 그해 6월 출시된다. 도스용 한/글 3.0은 윈도용 한/글 3.0에서 편집한 파일을 변환없이 바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인터페이스가 이전 한/글 2.5에서 약간 개선되고 도구상자를 추가함으로써 좀 더 편리한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영 자동 변환 기능 및 빠른 교정기능, 하이퍼 링크(하이퍼텍스트)기능이 추가되었다. 한편 덧실행 기능이 더 강화되어 PC통신 에뮬레이터/공학용 계산기/CD플레이어 등을 한/글 내부에서 실행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외에도 수채화라는 그래픽 편집/드로잉 프로그램을 도스용 한/그림이라는 이름으로 번들로 제공했으며, 타자연습 프로그램도 기본 제공했다. 가격은 기본팩+CD-ROM이 12만원의 가격으로 판매되었다.

 

3.0b 발표

윈도 95가 출시된 직후, 윈도용 한/글 3.0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3.0b가 출시되었다. 기본 내용은 3.0과 동일하지만 윈도 95에서도 실행이 가능해졌고, 여러가지 버그가 수정되었으며, 온페이지 드로잉 기능이 추가되었다. 윈도 3.1에서의 한/글의 여러가지 문제점이 윈도 95에서는 해결됨으로서 이 때를 기점으로 한/글이 윈도에서 자리를 잡게되는 계기가 된다. 

한/글 3.0b가 대중적인 성공을 얻고난 후, 한/글은 윈도용 워드프로세서로 완전히 성격을 탈바꿈한다. 더 이상의 도스용 버전 개발을 중단하고, 다음 버전인 윈도용 한/글 96의 개발에 모든 노력을 쏟아붓기 시작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의 공략과 한/글 오피스

이 때, 파워포인트와 엑셀과의 통합을 무기로 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의 국내 기업체 공략이 거세지기 시작한다. 그때까지의 최고의 오피스 슈트였던 로터스 1-2-3와 워드 퍼펙을 미국에서 완전히 물리친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는 95버전까지만 해도 한글판의 불완전한 번역, 잦은 버그, 한/글 문서와의 미호환, 국내에서 굳게 자리잡은 한/글의 텃세 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97버전에서 부터 VBA를 이용한 특유의 확장성, 네트웍을 통한 다중 사용자의 작업 공유 기능, 기존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지 못한 여러가지 사용자 편의 기능, 온페이지 드로잉 기능의 강화, 전세계 문서 호환 등을 앞세워 점차 기업체를 중심으로 사용자 수를 늘려가기 시작한다. 그 뿐 아니라 삼성전자라는 대기업의 자본을 발판으로 무섭게 성장해간 훈민정음도 한/글의 시장을 조금씩 잡아먹기 시작하면서 미처 기업 시장을 체계적으로 준비하지 못했던 한글과컴퓨터의 약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한 편 이때 한글과컴퓨터도 한/글을 기반으로 한 오피스 슈트를 출시하는데, 이 첫 주자는 한/글 3.0b의 초기판에 저가로 번들(한/글 3.0b 구입자에 한해 3만원의 가격에 판매)된 로터스 1-2-3와 프리랜스 그래픽스이다. 물론 서로 다른 회사의 제품을 통합한 것인 만큼, 호환성에 약간에 문제가 있었고, 로터스 1-2-3와 프리랜스 그래픽스가 이미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와의 경쟁에서 밀려나버린 제품들이라 그 파급력이 덜했지만 한컴이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와의 경쟁을 위해 어느정도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한/글 96과 한글과컴퓨터의 부진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다양한 소프트웨어와의 통합패키지로 선보인 한/글 프로 96과 한/글 오피스 96이 출시된다. 기본적으로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비롯해 인터넷 문서 편집, 문서마당 등 다양한 기능이 업그레이드 된 한/글 96을 기반으로, 주소록, 타자연습, 폼프로세서 틀마름이, 팩스프로그램, 메일 프로그램 등 다양한 유틸리티를 추가한 종합 선물세트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에 더해 한/글 오피스 96에는 이전에 선보였던 로터스 1-2-3와 프리랜스 그래픽스의 업그레이드 판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 한/글 프로 96과는 달리 기업체 시장을 타겟으로 출시된 한/글 오피스 96은 포함된 로터스 1-2-3와 프리랜스 그래픽스 프로그램의 기능 미비로 인해 별다른 반향을 얻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그나마 성공을 거둔 한/글 프로 96도 개인용 시장의 포화와 불법 복제등의 영향으로 이전 수준의 성공을 거뒀을 뿐 더 이상의 성장이 정체되면서 한글과컴퓨터의 미래는 점차 불투명해지기 시작한다. 한/글을 제외하면 한/그림, 한/아름, 한/맥등 출시한 여러 제품이 모두 실패했을 뿐 아니라 새롭게 진출한 인터넷 시장에서도 검색엔진인 심마니를 빼고 별다른 실적을 낳지 못하면서 점차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게 된 것이다. 

한/그림은 벡터용 드로잉프로그램으로, 저가에 상당히 뛰어난 성능을 발휘한 소프트웨어였지만 후속제품이 출시되지 못하고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 등이 선점한 시장을 뺏어내지 못함으로서 개발이 중단되는 비운을 겪어야만 했다. 또한 심마니도 국내 최초로 개발된 한글 자연어 검색엔진으로 상당히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며 한 때 검색 사이트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인기를 끌었으나 광고등의 수익유치에 실패하고 야후나 알타비스타 등의 국내 포털진출에 때맞춰 찾아온 한글과컴퓨터의 실적 악화로 데이콤에 팔리면서 후발주자인 네이버나 다음 등에 밀려나게 되었다. 

당시 국내에서 최고의 프로그래머들이 모였던 한글과컴퓨터는 경영 능력이 그에 미치지 못하면서 한/글의 기능 발전, 새로운 사업진출이나 시장개척에 어려움, 또한 IMF한파를 겪기 시작하고 결국 회사의 규모를 점차 줄이면서 한 때 2-3백명 가까웠던 사원들이 대폭 줄어 나중에는 60-70명 수준의 조그만 기업으로 남게된다. 그러나 1996년에는 한때 성공한 벤처기업모델로 부각도 되었으며, 정보통신업계최초로 코스닥에 등록되는 저력을 보여주기도 한 해이다. 

한/글 97

1996년 11월에는 한/글 96을 기반으로 중국어, 일본어 인터페이스 및 다국어 입력기를 채용한 한/글 국제판과 일본 시장을 목표로 한 한/글 일본판이 출시되었고, 1997년에는 한/글 97을 탑재한 한컴홈 97과 한컴오피스 97이 출시되었으나, 판매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1998년 초에는 한글과컴퓨터가 마이크로소프트의 투자를 받는 조건으로 한/글 소스코드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넘기고, 더 이상의 한/글 개발을 중단하기로 하는 양해각서를 마이크로소프트와 체결해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국민적인 반대여론에 부딪친 한글과컴퓨터는 이 협상을 없던 일로하고 한/글 815버전을 출시하는 한편, 한글과컴퓨터의 이찬진 사장은 회사 실적 악화의 책임(불법 소프트웨어도 한몫 단단해 했다.)을 지고, 한글과컴퓨터의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이때 PC통신 서명운동본부와 한글지키기 운동본부가 설립되고, 범국민 성금보내기, 공개제안투자제의 1인 1소프트웨어 갖기, 한 소프트 회원 운동등의 여러 운동을 통해 한글과컴퓨터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다.

한/글 워디안

한/글 2.1이후, 한/글 97까지는 커널 기반에서 커다란 변화가 없었다. 이로 인해 파일의 호환성도 어느정도 유지되었고, 사용법에도 큰 변화가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2000년 출시된 한/글 워디안은 모든 소스코드를 새로 작성함으로써 이전 버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 측에서 한/글 97의 소스코드를 갖고 있다는 점이 한글과컴퓨터에게 부담으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고 보여진다) 

한/글 워디안은 250단계의 다단계 되돌리기/반복 기능을 지원하고, 변형 다단 편집, 표 서식 기능 강화, 에센스 영한사전 및 표준 국어대사전을 삽입하는 등 커다란 개선사항이 있었지만, 워디안에서 작성한 문서가 이전버전에서 읽어지지 않는 문제, 이전버전의 문서가 워디안에서 본래대로 읽어지지 않는 문제, 프로그램의 안정성 문제가 지적되었고, 변경된 인터페이스에 익숙해지지 못한 사용자들이 여전히 한/글 97을 계속 사용하면서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다. 

한/글 2002

한/글 워디안을 기반으로 이전 버전 파일과의 호환성 문제 및 안정성 문제를 해결한 제품. 2001년 출시되었다. 이후 외국계 펀드와 당시 경영진과의 한글과컴퓨터사의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였으며 현재 한글과컴퓨터는 프라임산업개발의 자회사로 편입되었다. 

한/글 2004

XML 문서 지원과 공개키 기반 암호화, 스킨, 작업창 기능이 추가된 제품. 한/글 2004와 함께 출시된 한컴오피스 2004는 국산 스프레드쉬트인 넥셀과 자체 개발한 한컴슬라이드 2004를 포함함으로써 토종 오피스 슈트로의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아직 기능면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에 많이 밀리지만 가격이 저렴하고 마이크로소프트 엑셀, 파워포인트와 사용법이 비슷하며, 파일 호환도 가능해 주목받고 있다. 

한/글 2005

 


1. 동일한 문서의 이력을 관리할 수 있는 버전 관리 기능
2. 같은 문서의 서로 다른 버전끼리 비교 가능함으로써, 간편하게 문서 변천 과정 조회 가능
3. 문서의 레이아웃에 영향을 주지 않는 메모 삽입 기능으로 원활한 의사소통 가능
4.인쇄 옵션에서 삽입된 메모의 인쇄 여부 설정 가능
5.형광펜 기능으로 문서의 중요한 부분을 표시할 수 있어 문서 회람 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6.문서 수정 시 자주 사용하는 취소선을 바로 넣을 수 있도록 도구 상자에 아이콘이 추가되었습니다.
7.문서구조정보로부터(XML Schema 지원) 기본 XML 양식 생성
8.XML 문서 작성 및 저장, 읽기 지원
9.한/글 XML 서식과 Database의 자유로운 연동 가능
10.한/글 XML 서식에 존재하는 데이터 값을 ODBC(Open Database Connectivity)드라이버가 존재하는 데이터베이스로 저장/삭제/검색 등의 기능 지원

11.OLE Automation과 Script를 이용한 타 프로그램(그룹웨어,EDMS 등)과의 연동성 강화
12.도구 상자에서 필요한 양식 개체를 본문에 쉽게 삽입 가능
13.아랍어를 입력하고 출력할 수 있는 R2L(Right to Left) 기능으로 손쉬운 아랍어권 문서 작업 가능
14.공개키(PKI) 기반의 암호화 솔루션을 사용한 중요 문서의 보안 문서로 저장하기 지원
15.대화상자에 자신만의 설정 값을 저장, 쉽게 사용 가능 (인쇄/글자모양/편집용지/다단/각주,미주/표셀속성 등)
16.기본 스킨 외에 한/글 97, 고전, 메탈 스타일 등 다양한 스킨 제공으로 취향에 맞는 스킨 적용 가능
17. 자주 사용하는 특수문자나 클립아트를 별도로 관리할 수 있으므로 더욱 편리한 작업 가능
18. 한자로 변환 기능 대폭 개선
19. 문서 찾기 인터페이스 개선
20. 편집 용지의 여백을 마우스로 조절 가능

21.한/글 인쇄 관리자 기능
22.투명 대화 상자 설정 가능
23.마우스 움직임을 스크립트 매크로로 만들어 사용 가능
24.상호 참조 기능을 통한 편리한 문서 관리
25.표의 대칭 뒤집기 지원
26.마우스를 이용한 동일 비율 크기 조절 가능
27.여러 셀에 걸친 대각선 및 배경 입력 가능
28.자동 채우기 데이터 사용자 추가 기능
29.다양한 기능의 작업 창을 이용한 빠르고 편리한 문서 작업 가능
30. 한/글 97의 편리한 기능 반영 (연결 인쇄 /수식 입력 방식 지원)
31.찾기 기능 강화
32.한국인이 자주 사용하는 문서 서식 2,500개와 한/글 전용 클립아트 3,000여개를 제공.

MS의 DOS 나 Windows에만 국한하지 않고 자체적인 Linux시스템을 가지고 그를 기반으로 하는 한/글 및 넥셀 오피스 등고 개발해오고 있다.

○한글과 컴퓨터 사태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인 MS-Word는 세계 다수 지역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한/글로 인해 유독 대한민국에서만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고 한글과 컴퓨터는 방만한 경영으로 인해 1998년 5월 13일에 1차 부도를 낸 상태였다.[1] 한글과 컴퓨터와 마이크로소프트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한컴은 1998년 6월 15일에 극심한 불법 복제와 IMF 경제상황등을 이유로 자사의 대표제품인 한/글 워드프로세서 개발을 포기하고 소스코드를 넘기는 대신 마이크로소프트사로부터 1~2천만 달러 상당의 투자유치를 받아 인터넷등 신사업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사태는 한국방송 9시 뉴스에 보도될 정도로 파장이 컸고 소식을 접한 사용자들과 한글학자들은 한/글을 살려야 한다며 나섰다. 당시 사용되던 워드프로세서중에 조합가능한 모든 한글 글자와 한글 고어를 표현해낼 수 있는 워드프로세서는 자체 라이브러리(HNC 라이브러리)를 사용해서 조합형 한글 입력 시스템을 지원하고 있던 한/글이 거의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6월 22일에 메디슨 이민화 회장이 주도하고 한글학회등의 여러 단체가 참여한 한글지키기운동본부가 결성되어 활동에 들어갔고, 비트컴퓨터라는 업체에서는 번들용 한컴오피스97 패키지를 저가에 판매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결국 한글과컴퓨터사는 1998년 7월 20일에 한글지키기운동본부로부터 100억원의 투자유치를 받는 조건으로 마이크로소프트사와의 계약을 파기했다. 1998년 7월 27일에는 지오이월드 대표로 있던 전하진씨가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되었고, 1998년 8월 15일에 1년 회비 1만원에 한소프트 회원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한/글 97을 개선한(R4) 한/글 815 특별판이 발매되어 70만 카피가 팔리기도 했다. 한글과컴퓨터는 이후 외자유치 성공과 후속 인터넷서비스 발표를 통해 주가가 상승하여 회생에 성공하였다.

   이 사태는 사용자들에게 불법복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만들었고 소프트웨어 정품 사용운동이 확산되었다. 정부는 한동안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을 강력하게 시행하여 정품으로 인정되는 대상이 어느 정도까지인지 문의하는 현상이 얼마간 계속되었다.

○한글 파일에 걸린 패스워드 깨기?
한글 2.1 시절, 비밀번호 검사 루틴부분을 넘어가서 비밀번호 자체를 무력화한 크랙된 한글이 있었지만, 그것도 금방 패치업되면서 유야무야 사라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에 한컴에서 비밀번호 체계의 비트수를 64던가 128비트까지 올리면서 개발자조차 알아낼 수 없는 방식으로 바꿨던것으로 기억이 되네요. 슈퍼컴퓨터를 동원해도 몇년이 걸린다는 소리를 들었네요. 글고보니.;;
(그때 크랙버전을 만드셨던 분이 한컴에 입사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iOS8.3] Disappear UISlider???? bug, I found this…

// for ios8.3 [forbid disappear slider]

    [[UISliderappearance] setMinimumTrackTintColor:[UIColorcolorWithRed:0green:0blue:1alpha:1.0f]];

    [[UISliderappearance] setMaximumTrackTintColor:[UIColorcolorWithRed:0green:0blue:1alpha:1.0f]];

[이시대의 석학] 김용옥 선생님 (호칭을 뭘로 할지 몰라서…) 존경합니다.

김용옥(金容沃, 1948년 6월 14일 ~ )은 대한민국의 철학자, 언론인, 방송인이자 대학교수이다. 고려대학교 철학학사와 국립대만대학 철학석사, 도쿄대학교 철학석사, 하버드 대학교 비교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충청남도 천안 출신으로 호는 도올(檮杌), 본관은 광산이다.

 

 

생애[편집]

대학교수이자 학자이며 철학자, 언론인, 한의사이고, 극단의 단원으로도 활동하고, 연출가이고, 영화와 연극의 시나리오를 쓴 극작가이고, 언론에 기사와 칼럼을 써내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동,서양 철학과 종교사상까지 다양한 학문적 탐구와 저작 활동을 벌이고 있다. 1982년 9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부교수가 되고 85년 9월에는 동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1986년 양심선언(“한국의 오늘을 사는 한 지성인의 양심선언”)을 하며 고려대학교 교수직을 사퇴한 후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 등을 강의하기도 했다. 1988년 무렵부터 방송 강연에 출강하였다.

그는 문화계에서도 몇가지 활동을 했다. 악서고회(樂書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국악을 콘템포러리 뮤직으로 승화시키는 다양한 기초작업을 하였다.(1984년 3월~1987년 12월). 한국의 전통음악을 이끄는 대표적 주자, 백대웅, 김혜숙, 박범훈송방송, 이성천, 권오성, 최종민, 이보형, 양승희 등이 참여했다. 이후 한대수와 록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도도회(檮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한국화 교수들과 그 대학 출신 화가들(이종상,김병종,김호득,장상의,심현희,장혜용,이민주 등)과 정기적인 활동을 했다. (1988년 6월~1999년 6월)

영화와 연극활동도 했는데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마당극으로 유명한 극단 미추를 손진책, 김성녀와 함께 창단(1986년 8월)하여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키는 많은 연극 작업을 했다. 『시간의 그림자』,『그 불』 등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잠시 영화인 심포지움을 만들어 유현목,김수용,임권택,이장호,김호선,하명중,정지영,박광수,이두용,황기성 등과 활동했다. 이후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 『개벽』, 『취화선』의 대본을 썼고, 특히 『취화선』은 2002년 55회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획득하였다. 『취화선』과 『왕의 남자』의 자막은 직접 영역했다.

유기화학자 김용준과 함께 신과학운동 세미나를 주도하고, 대우재단지원 과학사상연구회(科學思想硏究會)를 설립했다.(1984년 3월~1990년 2월)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자․과학사상가들(조순탁,이성범,장회익,김두철,서정선,신중섭,이봉재 등)이 참여했으며 이후 꾸준히 과학과 철학이라는 학술지를 출간했다.

1989년에는 한국사상사연구소(Korean Institute of Classical Studies)를 세워 한국고전 최초의 일자색인인 『삼국유사인득』을 출간했다. 이 작업은 후에 제자 김현 교수의 방대한 『조선왕조실록』 전체 한글번역 프로그램인 CD-ROM작업으로 이어져 한국학의 신기원을 세웠을 뿐 아니라, 한류의 원류인 사극 드라마들의 희곡작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1993년에는 도올서원을 세워 15기에 걸쳐 3,000여 명의 학생을 배출해 한학의 배경을 가진 우수한 인재들이 이 사회에서 활약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민족문화추진회의 한국고전국역사업을 지원하였고, 그 기관은 이후 한국고전번역원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에는 태권도철학세미나를 개최하여 무술의 본질과 태권도문화의 세계화를 논하였다. 유병관,양진방,김영선,김용범,최의정,임신자,바비 클레이튼(Bobby Clayton),스티븐 카프너(Steven D. Capener) 등이 참여했고 이 세미나의 결과물로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를 집필․출간했다. 이 작업의 정신과 성과는 이후 무주 태권도공원으로 이어졌다.

한의대 졸업 후 도올한의원을 개원하여 2년간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 언론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중앙일보에는 “도올고함(檮杌孤喊)”이라는 칼럼을, 중앙선데이에는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신발굴 성서자료)를 연재하였다.

활동[편집]

학력[편집]

김용옥은 초등학교를 천안에서 졸업하고, 보성중·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고려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학였고, 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에서 수학한 후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72년 9월 대만으로 가서 국립대만대학 철학연구소에서 2년간 수학하면서 「노자 “자연” 철학에서의 “무위” 의 기능(老子「自然」哲學中「無爲」之功能)」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1974년 일본으로 가서 1977년까지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에서 수학하며 「왕선산의 동론(王船山の動論)」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7년에 미국으로 가서 펜실베니아대학교 동방학과 대학원과 하버드대학교에서 수학하였는데, 하버드대학교 동아시아어문학과에서 「왕부지의 철학, The Philosophy of Wang Fu-chih(1616~1692)」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에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에 입학하여 한의학사학위도 취득하였다.[2]

방송 출연[편집]

  • 1994년 MBC 《MBC 이야기쇼 만남, 공부란 무엇인가》
  • 1997년 SBS 《명의 특강, 건강하십니까》
  • 2004년 9월 8일 MBC 《아주특별한 아침 – 도올 김용옥, 랩 가수 데뷔?》
  • 2007년 7월 11일 KBS 《단박인터뷰》도올 김용옥
  • 2007년 10월 9일 KBS 스페셜 《남북정상회담 특별기획 도올의 평양이야기》
  • 2007년 12월 18일 MBC 《국민이 원하는 대통령》
  • 2013년 1월 KBS《이야기쇼 두드림》

TV 강의[편집]

  • 1999년 11월~2000년 2월 《노자와 21세기》(56회), EBS
  • 2000년 10월~2001년 5월 《도올의 논어 이야기》(64회), KBS
  • 2002년 8월~2002년 11월 《도올, 인도를 만나다》(28회), EBS
  • 2004년 1월~2004년 6월 《도올 한국사상사특강, 우리는 누구인가》(26회), MBC
  • 2006년 1월~2006년 5월 《도올특강 역사를 말한다》(6회), 광주MBC
  • 2006년 2월~2006년 8월 《논술세대를 위한 철학교실》(50회), EBS
  • 2009년 11월, 《도올특강 논어이야기》, 광주MBC
  • 2011년 9월~ 《중용, 인간의 맛》(36회), EBS

다큐멘터리 제작(연출)[편집]

  • 2004년 12월~2005년 8월 《도올이 본 한국독립운동사》(10회), EBS

인터넷 강의[편집]

  • 2007년 2월~ 《영어로 읽는 도올의 요한복음》(60강), EBSlang
  • 2010년 5월~ 《도마복음강해, 도올이 만난 살아있는 예수》, 나즐공
  • 2010년 5월~ 《대학(大學), 대학이란 무엇인가?》, 나즐공
  • 2011년 6월~ 《중용》, 나즐공

약력[편집]

  • 1953년 4월~1959년 3월 천안제3국민학교 졸업
  • 1959년 4월~1965년 2월 보성중·고등학교 졸업 (55회)
  • 1965년 3월~1967년 2월 고려대학교 이공대학 생물학과
  • 1967년 3월~1968년 2월 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
  • 1968년 3월~1972년 2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문학사, 「버트란드 럿셀의 논리원자주의」)
  • 1972년 3월~1972년 8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대학원
  • 1972년 9월~1974년 6월 대만 국립대만대학 철학연구소 (철학석사, 「노자 “자연” 철학중 “무위” 지공능(老子「自然」哲學中「無爲」之功能)」)
  • 1974년 9월~1975년 3월 일본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 연구생
  • 1975년 4월~1977년 2월 일본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 (철학석사, 「왕선산의 동론(王船山の動論)」)
  • 1977년 2월~1977년 7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동방학과 대학원
  • 1977년 9월~1982년 6월 미국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어문학과 (철학박사, 「왕부지의 철학, The Philosophy of Wang Fu-chich(1616~1692)」)
  • 1990년 3월~1996년 2월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 (한의학사)

경력[편집]

저술[편집]

동양 고전 해제 / 저서[편집]

  • 《東洋學 어떻게 할 것인가》, 통나무, 1985
  • 《절차탁마 대기만성》, 통나무, 1987
  • 도덕경 《老子哲學 이것이다》(上), 통나무, 1989
  • 도덕경 《老子-길과 얻음》, 통나무, 1989
  • 《나는 佛敎를 이렇게 본다》, 통나무, 1989
  • 《도올논문집》, 통나무, 1991
  • 《話頭, 혜능과 셰익스피어》, 통나무, 1998
  • 금강경《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통나무, 1999
  • 논어 《도올 논어》(1·2·3), 통나무, 2000(1권), 2001(2·3권)
  • 도덕경 《노자와 21세기》(1·2·3), 통나무, 1999(1권), 2000(2·3권)
  • 중용 《檮杌先生 中庸講義》(上), 통나무, 1995
  • 논어 《논어한글역주》(1·2·3), 통나무, 2008
  • 효경 《효경한글역주》, 통나무, 2009
  • 대학 《대학·학기 한글역주》, 통나무, 2009
  • 중용 《중용 한글역주》, 통나무, 2010
  • 중용 《중용, 인간의 맛》, 통나무, 2011
  • 맹자 《맹자, 사람의 길》, 통나무, 2012

한국철학 / 기철학[편집]

  • 《白頭山神曲-氣哲學의 構造》, 통나무, 1990
  • 《讀氣學說》, 통나무, 1990
  •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 통나무, 1990
  • 《三國遺事引得》, 통나무, 1992
  • 《氣哲學散調》, 통나무, 1992
  • 《삼국통일과 한국통일》(上·下), 통나무, 1994
  • 《혜강 최한기와 유교》, 통나무, 2004
  • 《삼봉 정도전의 건국철학》, 통나무, 2004
  • 《도올심득 東經大全》(1), 통나무, 2004

기독교 / 서양철학[편집]

  • 《이성의 기능》, 통나무, 1998 (원저: The function of Reason,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 《요한복음강해》, 통나무, 2007
  • 《기독교성서의 이해》, 통나무, 2007
  • 《큐복음서》, 통나무, 2008
  • 《도올의 도마복음이야기》(1), 통나무, 2008
  • 《도올의 도마복음한글역주》(1·2·3), 통나무, 2010

예술비평 / 작품집[편집]

  • 《어찌 묻힌단 말 있으리오》, 통나무, 1986
  • 《아름다움과 추함》, 통나무, 1987
  • 《이땅에서 살자꾸나》, 통나무, 1987
  • 《새춘향뎐》, 통나무, 1987
  • 《장군의 아들》, 통나무, 1990
  • 《石濤畵論》, 통나무, 1992
  • 《天命·開闢》, 통나무, 1994

의학[편집]

  • 《너와 나의 한의학》, 통나무, 1993
  • 《醫山問答-기옹은 이렇게 말했다》, 통나무, 1994
  • 《건강하세요》(Ⅰ), 통나무, 1998
  • 《21세기 한의학을 위하여》의 제2강, 경희대학교 출판국, 2009

평론 / 에세이 / 철학대중서[편집]

  • 《여자란 무엇인가》, 통나무, 1986
  • 《중고생을 위한 김용옥 선생의 철학강의》, 통나무, 1986
  • 《도올 金容沃의 新韓國紀 》, 통나무, 1990
  • 《도올세설》, 통나무, 1990
  • 《대화》, 통나무, 1991
  •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1·2·3), 통나무, 2002
  • 《도올의 淸溪川 이야기》, 통나무, 2003
  • 《도올의 국가비젼》, 통나무, 2004
  • 《앙코르와트·월남가다》(上·下), 통나무, 2005
  • 《논술과 철학 강의》(1·2), 통나무, 2006
  • 《계림수필》, 통나무, 2009
  • 《사랑하지 말자》, 통나무, 2012
  • 《도올의 아침놀》, 통나무, 2012

사건과 논란[편집]

천안함 침몰 사건 발언 무혐의[편집]

2010년 5월 23일 서울 봉은사에서 ‘코뿔소 외뿔처럼 홀로 가거라 : 동서화통의 깨달음’이라는 특별강연에서 천안함 사태에 대한 합동조사단 발표를 강력히 비판하여 라이트 코리아 등 보수단체에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소당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신유철 부장검사)는 라이트코리아 등 보수단체들이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조사 결과를 비난한 혐의로 도올 김용옥을 고발한 사건을 두고 무혐의 처리했다고 9월 27일 밝혔다.[3]

춘성과 육두 문자[편집]

2002년 10월 당시 방송 강연 중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선승 춘성 스님의 육두 문자 발언을 방송에 인용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4][5] 이때 방송 강연에서 그는 춘성 스님의 욕설과 육두문자를 그대로 전하여 논란이 되었다.[6]

정치적 성향 및 한국전쟁에 대한 관점[편집]

광주에서 열린 자신의 강의에서 김용옥은 6.25에 대해 “서울까지 단숨에 내려온 부대는 인민군이 아니라 중국내전에서 갈고 닦은 조선의용군 10만명”이라며 “남침이지만 남침이라 표현할 수 없다. 남침을 유도한 남한사회의 구조가 있다”고말하면서 “최고 원흉은 일본. 다음은 미국”이라며 “한국전쟁은 남침, 북침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 역사와 미국 제국주의 역사가 조선에서 만든 악랄한 죄악”이라고 주장했다.[7][8][9][10] 그러나 한국 전쟁 음모론은 소련의 문서 공개 등 학계에서 종결된 논란이며, 조선 인민군 부총참모장 이상조는 6.25는 김일성의 지시에의해 남침함으로써 시작됐다는데 이론이 있을수 없다고 말했다.[11]

다큐멘터리 내용[편집]

2005년 그가 제작한 EBS 10부작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도산 안창호의 중국 지린(吉林) 강연회에서 김일성은 안창호에게 ‘민족개조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질문을 하자 “안창호는 조금 전까지 일사천리로 펼쳐나가던 강연을 성급하게 마무리 짓고 연탁 앞에서 황황히 물러섰다”고 김일성의 회고록에 기재된 내용의 전체를 소개하며 어린 학생의 질문에 안창호가 성급하게 나갔다는 것은 과장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은 사실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일화는 명확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과장 또는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심지어 사실일 가능성 조차 있지만 명확한 것은 아직 없다.[12]

가족 관계[편집]

  • 부인: 최영애,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 딸: 김미루 (金彌陋), 작가, 미술가

같이 보기[편집]

주석[편집]

  1. 이동  도올 딸 김미루, 돼지와 104시간 ‘파격 누드 퍼포먼스’ 노컷뉴스 2011년 12월 4일작성
  2. 이동  [1]김용옥 프로필
  3. 이동  허환주 기자. ““천안함 발표 0.0001%도 믿을수 없다” 도올 김용옥 무혐의“, 《프레시안》, 2010년 9월 27일 작성.
  4. 이동  도올 TV 강의서 육두문자 인용 구설수 – 오마이뉴스
  5. 이동  도올 TV 강의 육두문자 논란- 한국일보
  6. 이동  도올 TV 강의서 육두문자 인용 구설수 – 오마이뉴스
  7. 이동  <일문일답> EBS 다큐멘터리 연출 도올 김용옥 연합뉴스 2005년 8월 2일작성
  8. 이동  도올 김용옥, “이제 ‘침략사’ 아닌 ‘항거사’ 써야한다” 노컷뉴스 2005년 8월 3일 작성
  9. 이동  극단으로 갈린 ‘도올EBS다큐’ 연합뉴스 2005년 8월 23일 작성
  10. 이동  도올 김용옥 “6.25를 남침이라 불러선 안돼” 2011년 3월 19일 뉴스웨이브
  11. 이동  “北韓(북한)은 金日成(김일성)의 개인兵營(병영) 경향신문 1989년 09월 12일 3면
  12. 이동  이상호 편집위원 김일성 예찬에 신명 경제풍월 2005년 10월호

바깥 고리[편집]

 

출처 : 남 주기 아까운 심리학  |  글쓴이 : 에너자이져 원글보기 

내가 복사한 출처 :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Nkhp&articleno=57

[자작도구]SQLite 용 파일을 공개해 봅니다. [한국 주식시장 흉내 데이터]

짧지 않은 기간동안 삽질한 결과물을 그저 공유해 봅니다.

한국 코스피 코스닥 주식시장을 흉내내본 DB 파일입니다.

https://github.com/darkhani/myhandStockDB

스크린샷 2015-05-15 오전 1.56.05

 

아! 압축부터 푸셔야 합니다. unzip plz….

개인적으로는 모바일용으로 나왔으면 하는 게임이 있어 이렇게 적어 봅니다.

모티브는

http://chartgame.com/play.cgi?bfduc9

제가 몰라서 그렇지 아마 이미 출시 되어 있을수도 있겠지요…

만약 사용자가 자산이 없는 경우에는

아이폰 게임(https://itunes.apple.com/kr/app/adventure-capitalist!/id927006017?mt=8)

이것처럼 알바 개념을 넣어서 돈 모이면, 주식에 투자 하는… 뭐 그런 게임 기획이다.

앱내 구입 기능으로 좀 뭔가 될듯 한데… 차트 분석기 설명도 넣고.. 음…

https://github.com/darkhani/myhandStockDB

 

이것으로 나마 상상의 나래를 펼쳐 봅니다.

 

[OpenSource]내손의서당-안드로이드-를 Github에 공개 하였습니다.

스크린샷 2015-05-13 오전 1.31.54

 

[프로젝트 다운로드 github는 여기]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프로그래밍 교육 하는것에 전적으로 찬성표를 던지는 한인택입니다.

프로그래밍 배웠다고 해서 모두모두 개발자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만,

뭔가 생각을 정리하고, 문제 해결하는데 있어서 접근법에 대해서는 나름 체계적으로 배울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내가 개발 해봐서 아는데… 하는 갑질은 걱정됩니다. ^^ 하하.

 

이번에 공개한 프로젝트는 안드로이드 개발을 공부하면서 연습삼아 만들어본 작품입니다.

물론 구글플레이에도 올려 둔 것 이고요.

[앱 다운로드는 여기]

이 프로젝트에서 뭔가 쓸만한 내용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오호 괜찬은데?” 라던가… “아! 대박.. 이건 아니지.. ” … 라든가 하는

안목을 키우는 면에서는 좋은 교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전 고수님들은 말고, 초보~ 1,2년차 분들에게 추천 드립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참 밑의 광고는 눌…… 씁… 강제는 아닙니다. ㅋㅋㅋ

[ios-xcode] 삽질할 뻔 한것을 기록합니다.

문제

objc_msgSend()报错Too many arguments to function call ,expected 0,have3

해결책

Xcode에서 프로젝트 최 상위를 누른다음에…

Build Setting–> Apple LLVM 6.0 – Preprocessing–> Enable Strict Checking of objc_msgSend Calls  改为 NO 로 설정

http://blog.csdn.net/u014351782/article/details/41347479 -> 谢谢。

 

 

[추억돋네] MSDOS6.22 의 추억 UBUNTU + VIRTUAL BOX

msdosinubuntu

1990년대엔 신나게 도스를 썼지만, MS-DOS 6.22 설치 화면은 요번에(?) 본다.

음.. “송세엽 도스” 책이 필요한 시기가 올 줄이야.. ㅋㅋ

config.sys 에 himem.sys  같은거 설정할 때 막 막 외우고 그런거 생각난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검색한다지만 정말 그때는 어찌 어찌 했는지.. ㅋㅋ

내친김에 페르시아의 왕자 와  fox , htt 한메타자.. 등등 다 깔아 봐야지.. ㅋㅋ

 

 

 

[TOMCAT] in UBUNTU14.04

Tomcat7 Install

http://www.krizna.com/ubuntu/install-tomcat-7-ubuntu-14-04/

MySql install

http://sharadchhetri.com/2014/05/07/install-mysql-server-5-6-ubuntu-14-04-lts-trusty-tahr/

PHP

https://www.digitalocean.com/community/tutorials/how-to-install-linux-apache-mysql-php-lamp-stack-on-ubuntu-14-04

 

Tomcat7 을 우분투에 설치해 보려고 구글링 하다가 잘 정리되어 있는 곳을 찾아서 정리해 본다.

mysql도 해두는 것은 워드프레스를 내 개인적 서버에 설치해서 뭐좀 해보려 했더니 일단 설치하래서 해둔다

 

sqlite query text file 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는

sqlite> .read <filename>

요로코롬 하면 삽질 안해도 된당.

 

* UBUNTU 에서 virtual box 에러날때

  1. Run command:

    sudo gedit /etc/apt/sources.list.d/vbox.list and paste in this line, then save:

    deb http://download.virtualbox.org/virtualbox/debian quantal contrib

  2. Run:

    sudo apt-get update && sudo apt-get -y upgrade to update your machine to the latest

  3. Run: sudo apt-get remove virtualbox* Then install Oracle’s version:

    sudo apt-get install virtualbox-4.3

Should work now. Don’t forget to download the extension pack from http://www.virtualbox.org as well.

 

ㅋㅋ

저 사이트 주인장 님들 땡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