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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애정틈진문에 빠지다. – ep32 완결 시청완료 했습니다. ㅋㅋㅋ

스크린샷 2014-05-27 오전 3.03.00

 

결국 해피엔딩… ㅎㅎㅎ

요녀석이 참 맘에 안들더니만 Ya yin 이랑 결국 ㅋㅋㅋ 얼레꼴레..  했네요. ㅋ 운명이라… ㅎ

TV도 안보고 참 재미 없이 살던 메마른 눈에 다가 촉촉한 자극을 하게 해준 고마운 드라마네요.

이미 2년 정도 지난 드라마인데…. 저는 얼마 전에 알긴했지만.. ㅎㅎ 좀더 중국 드라마에 관심을 가져야 겠습니다. ㅋㅋㅋ

완전 유치 뽕짝이라고 하실수도 있겠지만 저는 참… 말로 재밌게 시청했다지요.. ㅋㅋ

뚜이부치… (미안해… 정도?)

워…뿌쯔다오…(나.. 몰라요… 정도..)

썅신워… (나를 믿어요.)

니… 니….. (너… 너… 혹은 당신… 당신… ㅋㅋ)

추커…. (닥쳐… ㅋㅋ)

등등 몇몇 단어들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네요… ㅋㅋ

음.. 계속 들을지 모르겠지만.. 자막없이 다 알아 듣는 날까지 화이팅 해 봐야 겠네요.. ㅋㅋㅋㅋㅋㅋ

 

[고전] 大學 원문 + 풀이글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hjang3&logNo=140135725286

우선 여기 주인장님 감사 드립니다.

 

아직 천자문도 다 떼지 못했거늘… 감시 대학을 실어 봅니다… ㅋㅋ

언젠가는 대학을 읊을 날을 고대하면서.. ㅎㅎ 2014.05.05 인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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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學

 

大學章句序

 

大學之書는 古之大學1)에 所以敎人之法也라. 蓋2)自天降3)生民4)으로 則旣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언마는 然이나 其氣質之稟5)이 或不能齊6)라. 是以로 不能皆有以知其性之所有而全之也라. 一有聰7)明叡8)智能盡其性者 出於其間이면 則天必命之하사 以爲億兆9)之君師하여 使之治而敎之하여 以復其性케하시니 此는 伏羲10)神農黃帝堯舜所以繼天立極11)이요. 而司徒之職과 典樂之官을 所由設也라.

『大學』이라는 책은 옛날 太學에서 사람을 가르치던 법이다. 하늘이 사람을 내림으로부터 이미 仁義禮智의 性을 부여하지 않음이 없건마는 그 기질을 받은 것이 모두 같지는 않다. 그러므로 모두 그 本性의 소유함을 알아 온전하게 함이 있지 못한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총명하고 지혜에 밝아 그 본성을 다한 자가 그 사이에 나옴이 있으면, 하늘이 반드시 그에게 명하시어 모든 백성의 군주와 스승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리고 가르쳐서 그들의 본성을 회복하게 하시니, 이는 복희 ․ 신농 ․ 황제 ․ 요 ․ 순이 하늘의 뜻을 잇고 법칙을 세운 것이요, 司徒의 직책과 典樂의 벼슬을 이 때문에 만든 것이니라.

 

 

三代之隆12)에 其法寖13)備하니 然後에 王宮國都로 以及閭14)15)16)히 莫不有學하여 人生八歲어든 則自王公以下로 至於庶人之子弟히皆入小學하여 而敎之以灑17)18)應對進退之節과 禮樂射御19)書數之文하고 及其十有五年이어든 則自天子之元子衆子로 以至公卿大夫元士之適20)子와 與凡民之俊秀히 皆入大學하여 而敎之以窮理正心修己治人之道하니 此又學校之敎에 大小之節이 所以分也라.

三代의 융성했을 때에 그 법이 점점 갖추어졌으며, 그런 뒤에 왕궁과 나라의 도읍으로부터 시골마을에 이르기까지 학교가 있지 않은 곳이 없어, 사람이 태어난 지 여덟 살이 되면 王公으로부터 서인의 자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교에 들어가서 물 뿌리고 쓸며 응하고 대답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절과 禮 ․ 樂 ․ 射 ․ 御 ․ 書 ․ 數의 글을 가르치고, 열다섯 살에 이르거든 天子의 元子 ․ 衆子로부터 公 ․ 卿 ․ 大夫 ․ 元士의 嫡子와 모든 백성의 俊秀한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太學에 들어가서 이치를 궁구하고 마음을 바루며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쳤으니, 이는 또 학교의 가르침에 크고 작은 절차가 나누어진 이유이다.

 

 

夫以學校之設이 其廣如此하고 敎之之術이 其次第節目之詳이 又如此로되 而其所以爲敎는 則又皆本之人君躬21)行心得之餘요 不待求之民生日用彛22)倫之外라 是以로 當世之人이 無不學하고 其學焉者 無不有以知其性分之所固有와 職分之所當爲하여 而各俛23)焉以盡其力하니 此古昔24)盛時에 所以治隆於上하고 俗美於下하여 而非後世之所能及也라.

학교를 세움의 그 넓음이 이와 같고 가르치는 방법이 그 차례와 절목의 상세함이 또 이와 같되, 그 가르침은 또 모든 인군이 몸소 행하고 마음에 얻은 나머지에 근본하고 민생이 일상 생활하는 이륜의 밖에서 구함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러므로 당세의 사람들이 배우지 않은 이가 없었고, 배운 자들은 그 성분에 고유한 바와 직분에 당연한 바를 알아서 각기 힘써 그 힘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이는 옛날 융성할 때에 정치가 위에서 높고 풍속이 아래에서 아름다워 후세에서 능히 따를 바가 아닌 까닭이다.

 

及周之衰하여 賢聖之君不作25)하고 學校之政不修하여 教化陵26)27)28)하고 風俗頽29)敗하니 時則有若孔子之聖이사도 而不得君師之位하여 以行其政教하시니 於是에 獨取先王之法하여 誦而傳之하여 以詔30)後世하시니 若曲禮少儀内則弟子職諸篇은 固小學之支31)流餘裔32)33)요 而此篇者는 則因小學之成功하여 以著大學之明法하니 外有以極其規模之大하고 而内有以盡其節目之詳者也라 三千之徒가蓋莫不聞其説이언마는 而曾34)氏之傳이 獨得其宗일새 於是에 作爲傳義하여 以發其意러시니 及孟子沒而其傳泯35)焉하니 則其書雖存이나而知者鮮36)矣라.

周나라의 쇠함에 이르러 어질고 聖스러운 君主가 나오지 못하고, 학교의 政事가 닦아지지 못하여 교화가 침체되고 풍속이 무너지니, 이때에는 孔子 같은 聖人이 계셔도 人君과 스승의 지위를 얻어 政事와 가르침을 행할 수 없었다. 이에 홀로 先王의 법을 취하여 외워서 전하여 후세를 가르치시니, 「曲禮」․「少儀」․「內則」․「弟子識」같은 여러 책은 진실로 小學의 한 부분이며, 이 책은 小學의 성공으로 인하여 大學의 밝은 법을 드러내었으니, 밖으로는 그 規模의 큼을 다함이 있고, 안으로는 그 節目의 상세함을 다함이 있다. 삼천 명의 門徒가 그 말씀을 듣지 않은 이가 없건마는 曾氏의 전함이 홀로 그 宗統을 얻었다. 이에 傳義를 지어 그 뜻을 밝게 드러내었는데, 孟子가 별세함에 이르러 그 전함이 끊기니 그 책이 남아 있으나 아는 자가 드물었다.

 

自是以來로 俗儒記誦詞37)章之習이 其功倍於小學而無用하고 異端虚無寂38)滅之教 其高過於大學而無實하고 其他權謀術數一切以就39)功名之説과 與夫百家衆技之流 所以惑40)世誣41)民하여 充塞42)仁義者가 又紛然雜出乎其間하여 使其君子로 不幸而不得聞大道之要하고 其小人으로 不幸而不得蒙43)至治之澤하여 晦44)45)46)塞하고 反覆沈47)48)49)하여 以及五季之衰而壊50)亂極矣라.

이로부터 지금까지 俗儒들의 記誦과 詞章의 익힘이 그 공부가 小學보다 배가 되었으나 쓸 데가 없었고, 異端의 虛無51), 寂滅52)의 가르침은 그 높음이 大學보다 더하였으나 실체가 없었으며, 기타 權謀術數로써 일체 功名을 이루는 學說과 百家 衆枝의 부류들이 세상을 유혹하고 백성을 속여 仁義를 막는 자들이 또 紛紛하게 그 사이에서 섞여 나와서 爲政者로 하여금 불행하게도 大道의 要諦를 얻어 듣지 못하게 하고, 백성으로 하여금 불행하게도 至治의 혜택을 얻지 못하게 하여 세상이 더욱 어두워지고 혼란에 빠져 五季의 쇠함에 이르러 무너지고 혼란함이 지극하였느니라.

 

天運循53)54)하여 無往不復일새 宋徳隆盛하여 治教休55)明하시니 於是에 河南程56)氏兩夫子出하사 而有以接乎孟氏之傳이라. 實始尊信此篇而表章57)之하시고 既又為之次其簡編하여 發其歸趣58)하시니 然後에 古者大學敎人之法과 聖經賢傳之指가 粲59)然復明於世하니 雖以熹60)之不敏61)으로도 亦幸私淑62)而與有聞焉호라 顧63)其爲書 猶頗64)65)失일새 是以로 忘其固陋하고 采66)而輯之하며 間亦竊67)附己意하여 補其闕68)略하고 以俟69)後之君子하노니 極知僭70)71)無所逃罪어니와 然이나 於國家化民成俗之意와 學者修己治人之方엔 則未必無小補云이니라.

淳熈己酉二月甲子에 新安朱熹는 序하노라.

天運이 循環하여 가고 돌아오지 않음이 없다. 그리하여 宋나라의 德이 융숭하여 정치와 교육이 아름답고 밝았다. 이에 河南程氏 두 夫子가 나오시어 孟氏의 전통을 접함이 있었다. 실제로 처음 이 책을 높이고 믿어 表章하시고, 또 이를 위하여 그 簡編을 차례하여 歸趣를 밝히시니, 그런 뒤에 옛날 太學에서 사람을 가르치던 법과 聖經賢傳의 뜻이 찬란하게 다시 세상에 밝아지니, 비록 나의 不敏함으로도 또한 다행히 私淑하여 들음에 참여하였노라. 다만 그 책이 아직도 佚失됨이 많았다. 그러므로 그 固陋함을 잊고, 뽑아 모아 그 사이에 또한 나의 의견을 붙여 빠진 부분을 보충하고 後世의 君子를 기다리니, 참람하고 주제넘음이 그 罪를 피할 수 없음을 지극하게 알고 있으나, 나라의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루려는 뜻과 배우는 자들의 몸을 닦고 사람을 다스리는 방법에 있어서는 다소의 도움이 없지 않을 것이니라.

淳熙 己酉 二月 甲子日에 新安 朱熹는 序하노라.

 

 

讀大學法

 

 

朱子曰 語孟은 隨事問答하여 難見要領이어니와 惟大學은 是曾子述孔子說古人爲學之大方이요 而門人이 又傳述以明其旨라 前後相因하고 體統都具하니 玩72)味此書하여 知得古人爲學所向하고 却讀語孟하면 便易入이니 後面工夫雖多나 而大體已立矣니라.

朱子께서 말씀하였다. 『論語』와 『孟子』는 일에 따라 문고 답하여 要領을 보기가 어렵거니와 오직『大學』은 曾子가 孔子께서 옛 사람들이 學問하던 큰 방법을 말씀하신 것을 記述하였고, 門人들이 또 傳述하여 그 뜻을 밝혔다. 그리하여 앞뒤가 서로 因하고 體統이 모두 갖추어졌으니, 이 책을 玩味하여 옛 사람이 學問을 함에 있어서 향했던 바를 알고, 『論語』와 『孟子』를 읽으면 곧 들어가기가 쉬우니, 後面의 工夫가 비록 많으나 大體가 이미 서게 된다.

 

看這73)一書 又自與看語孟不同하니 語孟中엔 只一項事 是一箇道理라 如孟子說仁義處엔 只就仁義上說道理하고 孔子答顔淵以克己復禮엔 只就克己復禮上說道理어니와 若大學은 却74)只統說이라 論其功用之極인댄 至於平天下라 然이나 天下所以平은 却先須治國이요國之所以治는 却先須齊家요 家之所以齊는 却先須修身이요 身之所以修는 却先須正心이요 心之所以正은 却先須誠意요 意之所以誠은却先須致知요 知之所以至는 却先須格物이니라.

이 한 책을 보는 것은 또 자연『論語』·『孟子』를 보는 것과는 같지 않으니,『論語』·『孟子』에서는 다만 한 가지 일이 하나의 道理일 뿐이다. 예를 들면, 孟子께서 仁義를 말씀하신 부분에서는 다만 仁義上에 나아가 道理를 말씀하였고, 孔子께서 顔淵에게 克己復禮로써 답하신 것에는 다만 克己復禮上에 나아가 道理를 말씀하셨을 뿐이다. 그런데『大學』으로 말하면 통합하여 말씀하였으니, 그 功用의 지극함을 논할진댄 天下를 平함에 이른다. 그러나 천하가 평하게 되려면 먼저 나라를 다스려야 하고, 나라가 다스려지려면 먼저 집안을 가지런히 하여야 하고, 집안이 가지런하려면 먼저 몸을 닦아야 하고, 몸이 닦아지려면 먼저 마음을 바루어야 하고, 마음이 바루어지려면 먼저 뜻을 성실히 하여야 하고, 뜻이 성실해지려면 먼저 知識을 지극히 하여야 하고, 지식이 지극해지려면 먼저 事物의 이치를 궁구하여야 한다.

 

大學은 是爲學綱目이니 先讀大學하여 立定綱領하면 他書는 皆雜說在裏75)許라 通得大學了하고 去看他經이라야 方見得此是格物致知事며 此是誠意正心事며 此是修身事며 此是齊家治國平天下事니라.

『大學』은 이 학문을 하는 綱目이니, 먼저『大學』을 읽어 鋼領을 세우면 다른 책은 모두 雜說하여 이 속에 들어 있다.『大學』을 통달하고 다른 經書를 보아야 이것이 格物 · 致知의 일이며, 이것이 誠意 · 正心의 일이며, 이것이 修身의 일이며, 이것이 齊家 · 治國 · 平天下의 일임을 보게 될 것이다.

 

今且熟讀大學하여 作間架76)하고 却以他書塡77)補去하라.

이제 우선『大學』을 익숙히 읽어 빈칸을 만들고, 다른 책으로써 메워 가도록 하라.

 

大學은 是通言學之初終이요 中庸은 是指本原極致處니라.

『大學』은 이 學問의 처음과 끝을 통틀어 말하였고, 『中庸』은 이 本原의 지극한 부분을 가리켰다.

 

問欲專看一書인댄 以何爲先이니잇고 曰 先讀大學하면 可見古人爲學首末次第하니 不比他書라 他書는 非一時所言이요 非一人所記니라.

묻기를 “오로지 하나의 책을 보고자 하는데 무엇을 우선으로 삼아야 합니까?” 하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먼저『大學』을 읽으면 옛 사람들의 學問을 한 시작과 끝의 차례를 볼 수 있으니, 다른 책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다른 책은 한 때에 말씀한 것이 아니며, 한 사람이 기록한 것이 아니다.”

 

又曰 看大學엔 固是著逐句看去나 也78)須先統讀傳文敎79)熟이라야方好從頭仔80)細看이니 若專不識傳文大意면 便看前頭亦難니라.

또 말씀하였다. “『大學』을 볼 때는 진실로 글귀마다 하나하나 보아가야 할 것이나, 또 傳文을 統讀하여 익숙하게 한 다음에 처음부터 자세히 보는 것이 좋으니, 만일 傳文의 大意를 전혀 모른다면 앞부분을 보는 것도 또한 어려울 것이다.”

 

又曰 嘗欲作一說敎人하노니 只將大學하여 一日去讀一遍하여 看他如何是大人之學이며 如何是小學이며 如何是明明德이며 如何是新81)民이며 如何是止於至善고하여 日日如是讀하여 月來日去면 自見이니 所謂溫故而知新이니라 須是知新이라 日日看得新이라야 方得이니却不是道理解新이요 但自家這箇意思長長地新이니라.

또 말씀하였다. “내 일찍이 하나의 말을 지어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노니, 다만『大學』을 가지고 하루에 한 차례씩 읽어 저 어떤 것이 이 大人의 學問이며, 어떤 것이 이 小學이며, 어떤 것이 이 明明德이며, 어떤 것이 이 新民이며, 어떤 것이 이 止於至善인가를 보아, 날마다 이와 같이 읽어, 달이 가고 날이 가면 스스로 보게 될 것이니, 이른바 ‘溫故而知新’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하니, 날마다 새로운 것을 보아야 될 것이다. 이는 道理가 새로워지는 것이 아니요, 다만 자기의 意思가 자라나 새로워지는 것이다.”

 

讀大學에 初間에 也只如此讀이요 後來에 也只如此讀이로되 只是初間讀得엔 似不與自家相關이라가 後來看熟하면 見許多說話須著如此做82)요 不如此做自不得이니라.

『大學』을 읽을 때에는 처음에도 이와 같이 읽고, 後來에도 이와 같이 읽되, 다만 처음 읽을 때에는 자기와 상관이 없는 듯하다가 後來에 익숙히 보면 許多한 말씀을 이와 같이 工夫하여야 할 것이요, 이와 같이 工夫하지 않으면 안 됨을 보게 될 것이다.

 

讀書에 不可貪多하니 當且以大學爲先하여 逐83)84)熟讀精思하여須令了了分明이라야 方可改讀後段하되 看第二段에 却思量前段하여令文意連屬85)이 却不妨이니라.

책을 읽을 때는 많음을 탐해서는 안 되니, 마땅히 우선『大學』으로써 먼저 하여 段落마다 익숙히 읽고 精히 생각하여, 모름지기 了了하여 分明하게 하고서야 뒤 段落을 바꾸어 읽되, 第二의 段落을 볼 때에는 앞 段落을 생각하여 글 뜻이 연결되게 함이 無妨하다.

 

問大學稍通에 方要讀論語한대 曰 且未可하니 大學稍86)通이면 正好著87)心精讀이니라 前日讀時엔 見得前하고 未見得後面하며 見得後하고 未見得前面이러니 今識得大綱體統하니 正好熟看이니 讀此書功深이면 則用博니라 昔에 尹和靖88)은 見伊川半年에 方得大學西銘看이러니 今人은 半年에 要讀多少書로다 某且要人讀此는 是如何오 緣89)此書却不多而規模周備일새니라 凡讀書에 初一項에 須著十分工夫了면第二項엔 只費得八九分工夫요 第三項엔 便只費得六七分工夫라少間讀漸90)多하면 自通貫하여 他書는 自著不得多工夫니라.

묻기를 “『大學』을 조금 통함에『論語』를 읽으려고 합니다.” 하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不可하니,『大學』을 조금 통하였으면 바로 마음을 붙여 精讀함이 좋다. 前日에 읽을 때에는 前面만 보고 後面은 보지 못하며, 後面만 보고 前面은 보지 못하였는데, 이제 大綱과 體統을 알았으니, 익숙히 읽는 것이 참으로 좋다. 이 책을 읽어 功力이 깊어지면 쓰임이 넓을 것이다. 옛날에 尹和靖은 伊川先生을 뵌 지 半年만에 바야흐로『大學』과『西銘』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 사람들은 半年동안에 많은 책을 읽으려고 한다. 내가 우선 이 책을 읽으라고 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이 책은 분량이 많지 않으면서도 規模가 두루 완비되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을 때는 첫 번째 1項에 十分의 공부를 하여야 하니, 이렇게 하면 제2項에는 다만 八九分의 工夫를 허비하면 되고, 제 3項에는 다만 六七分의 工夫를 허비하면 된다. 얼마 동안 읽기를 점점 많이 하면 저절로 通貫되어, 다른 책은 자연히 많은 工夫를 하지 않아도 된다.”

 

看大學에 俟91)見大指하여 乃及他書니라 但看時에 須是更將大段하여分作小段하여 字字句句를 不可容易放過요 常時暗誦默92)思하여 反覆硏究하여 未上口時엔 須敎上口하고 未通透93)時엔 須敎通透하고已通透後엔 便要純熟하여 直待不思索時에도 此意常在心胸94)之間하여 驅95)96)不去라야 方是此一段了하고 又換一段看이니 令如此數段之後엔 心安理熟하여 覺工夫省力時에 便漸得力也리라.

『大學』을 볼 때에는 大指를 보기를 기다려 다른 책에 이르러야 한다. 다만 볼 때에 다시 큰 段落을 가지고 나누어 작은 段落으로 만들어, 字字句句를 容易하게 지나쳐 버리지 말 것이요, 恒時 暗誦하고, 묵묵히 생각하며, 반복하여 硏究해서 아직 입에 오르지 않았을 때에는 입에 오르게 하고, 아직 通透하지 못했을 때에는 通透하게 하고, 이미 通透한 뒤에는 純熟하기를 要하여, 곧바로 思索하지 않을 때에도 이 뜻이 항상 마음과 가슴 사이에 있어서 쫓아 보내도 가지 않기를 기다려서야 이 한 段落을 마치고, 또 한 段落을 바꾸어 보아야 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하기를 몇 段落을 한 뒤에는 마음이 편안하고 이치가 익숙해져서 工夫하기에 힘이 덜 드는 것을 느낄 때에 곧 점점 得力하게 될 것이다.

 

又曰 大學은 是一箇腔97)子니 而今却要塡敎他實이라 如他說格物엔自家須是去格物後塡敎他實이요 著誠意亦然이니 若只讀得空殼98)子하면 亦無益也니라.

또 말씀하였다. “『大學』은 이 하나의 빈칸이니, 지금 이것을 메워 꽉 차게 하여야 한다. 예컨대 저 格物을 말한 것에는 자신이 格物한 뒤에 메워 꽉 차게 하여야 하고, 誠意를 할 때에도 또한 이렇게 하여야 한다. 만일 빈껍데기만을 읽는다면 또한 유익함이 없다.”

 

讀大學이 豈在看他言語리오 正欲驗之於心如何니 如好好色, 惡惡臭를 試驗之吾心하여 果能好善惡惡如此乎아 閒居爲不善이 是果有此乎아하여 一有不至어든 則勇猛奮99)100)不已101)라야 必有長進이니라 今不知如此하면 則書自書, 我自我이니 何益之有리오.

『大學』을 읽는 것이 어찌 그 言語를 봄에 있으리오. 바로 이 마음에 어떤가를 징험하려고 해야 하니, 마치 好色을 좋아하듯이 하고 惡臭를 미워하듯이 함을 내 마음에 시험하여, 과연 善을 좋아하고 惡을 미워함을 이와 같이 하는가, 한가히 거처할 때에 不善을 함이 이 과연 이러함이 나에게도 있는가 하여, 하나라도 지극하지 못함이 있으면, 용맹하게 분발하고 뛰어 일어나 그치지 않아야 반드시 큰 進展이 있는 것이다. 이제 이와 같이 할 줄을 알지 못하면 책은 책대로 이고 나는 나대로 일 것이니,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又曰 某一生에 只看得這文字透하여 見得前賢所未到處로라 溫公이作通鑑하고 言平生精力盡在此書라하더니 某於大學에 亦然하노니 先須通此라야 方可讀他書니라.

또 말씀하였다. “나는 一生에 다만 이 文字를 보아 通透하여, 前賢들이 미처 보지 못하신 것을 보았노라. 司馬溫公이『通鑑』을 짓고, ‘平生의 精力이 모두 이 책에 있다.’ 하였는데, 나도『大學』에 있어 또한 그러하다. 먼저 이 책을 통달하여야 비로소 다른 책을 읽을 수 있다.”

 

又曰 伊川이 舊日敎人에 先看大學하시니 那102)時엔 未解說이러니 而今有註解하여 覺大段分曉103)了하니 只在仔細看이니라

또 말씀하였다.  “伊川先生이 옛날 사람을 가르치실 때 제일 먼저『大學』을 보게 하셨으니, 그 때에는 解說이 없었는데, 지금에는 註解가 있어 대단히 분명함을 느낀다. 다만 자세히 봄에 달려 있다.”

 

又曰 看大學엔 且逐章理會104)하여 先將本文念得하고 次將章句來解本文하고 又將或問來參章句하여 須逐一令記得하여 反覆尋105)究하여 待他浹106)107)하여 旣逐段曉得이어든 却統看溫尋過니라.

또 말씀하였다. “『大學』을 볼 때에는 우선 章마다 하나하나 理解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먼저 本文을 생각하여 알고, 다음에 章句를 가지고 本文을 해석하고, 또다시 或問을 가지고 章句를 參考하여, 하나하나 기억하여 반복해서 찾고 연구하여 젖어들기를 기다려 이미 段落마다 깨우쳤으면 다시 統合하여 보아 찾아야 한다.”

 

又曰 大學一書는 有正經하고 有章句하고 有或問하니 看來看去면 不用或問하고 只看章句便了요 久之면 又只看正經便了요 又久之면 自有一部大學이 在我胸中하여 而正經亦不用矣리라 然이나 不用某許多工夫면 亦看某底108)不出이요 不用聖賢許多工夫면 亦看聖賢底109)不出이니라.

또 말씀하였다. “『大學』한 책에는 正經이 있고, 章句가 있고, 或問이 있으니, 보아가고 보아오면 或問을 사용하지 않고, 다만 章句만 보아도 될 것이요, 오래하면 또 다만 正經을 보면 될 것이요, 또 오래하면 자연히 한 卷의『大學』이 자신의 가슴속에 있어서 正經 또한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의 허다한 공부를 쓰지 않는다면 또한 나를 보는 것이 되지 못할 것이요, 聖賢의 허다한 工夫를 쓰지 않는다면 또한 聖賢을 보는 것도 되지 못할 것이다.”

 

又曰 大學解本文未詳者를 於或問中에 詳之하니 且從頭逐句理會110)하여 到不通處어든 却看하라 或問은 乃註脚111)之註脚이니라.

또 말씀하였다. “『大學』에 本文을 해석한 것이 상세하지 못한 것을 或問에서 상세히 말하였으니, 우선 처음부터 글귀마다 이해하여 통달하지 못하는 곳에 이르거든 보라. 或問은 바로 註脚의 註脚이다.”

 

某解書에 不合太多요 又先準備學者하여 爲他說疑說了하니 所以致得學者看得容易了니라.

내가 글을 해석함에 너무 많이 할 것이 없고, 또 우선 배우는 자들을 대비하여, 疑問을 假說하여 說明하였으니, 이는 배우는 자들이 보기에 容易하게 하려고 해서이다.

 

人只說某說大學等不略說하여 使人自致思라하니 此事大不然이라 人之爲學이 只爭箇肯112)與不肯耳니 他若不肯向這裏면 略亦不解致思요 他若肯向此一邊이면 自然有味하여 愈113)詳愈有味하리라.

사람들은 다만 ‘내가『大學』등을 해석함에 간략히 설명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을 다하도록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이 일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學問을 함에는 다만 즐겨하는가 즐겨하지 않는가를 따질 뿐이니, 저들이 만일 이(學問) 속으로 향하기를 즐겨 하지 않는다면 간략해도 또한 생각을 다할 줄 모를 것이요, 저들이 만일 이 한 쪽으로 향하기를 즐겨한다면 자연히 재미가 있어 더욱 상세할수록 더욱 재미가 있을 것이다.

 

 

大學章句

 

 

子程子曰 大學은 孔氏之遺114)書而初學入德之門也라 於今에 可見古人爲學次第者는 獨賴115)此篇之存이요 而論孟次之하니 學者必由是而學焉이면 則庶116)乎其不差117)矣리라.

子程子께서 말씀하셨다. “『大學』은 孔子가 남긴 글이니, 처음 배우는 자가 德에 들어가는 門이다. 지금 옛 사람들이 學問을 한 차례를 볼 수 있는 것은 유독 이 篇이 남아 있음을 의뢰하고,『論語』와『孟子』가 그 다음이 되니, 배우는 자가 반드시 이로써 배우면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다.”

 

經 一章

 

大學之道는 在明明德하며 在親民하며 在止於至善이니라.

『大學』의 道는 明德을 밝힘에 있으며, 백성을 새롭게 함에 있으며, 至善의 그침에 있다.

 

程子曰 親은 當作新이라.

程子께서 말씀하였다. “親은 마땅히 新이 되어야 한다.”

 

大學者는 大人之學也라 明은 明之也라 明德者는 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하여 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라 但爲氣稟所拘와 人欲所蔽118)하면 則有時而昏이라 然이나 其本體之明은 則有未嘗息者라 故로 學者當因其所發而遂明之하여 以復其初也라 新者는 革119)其舊之謂也니 言 旣自明其明德이면 又當推以及人하여 使之亦有以去其舊染120)之汚也라 止者는 必至於是而不遷之意요 至善은 則事理當然之極也라 言 明明德, 新民을 皆當止於至善之地而不遷이니 蓋必其有以盡夫天理之極이요 而無一毫121)人欲之私也라 此三者는 大學之綱領也라.

大學은 大人의 학문이다. 明은 밝힘이다. 明德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바, 虛靈하고 어둡지 않아서 衆理를 갖추어 있고 萬事에 응하는 것이다. 다만 氣稟에 구애된 바와 人慾에 가린 바가 되면 때로 어두울 적이 있으나, 그 本體의 밝음은 일찍이 쉬지 않는다. 그러므로 배우는 자가 마땅히 그 發하는 바를 인하여 마침내 밝혀서 그 처음을 회복하여야 한다. 新은 옛 것을 고침을 이른다. 이미 스스로 그 明德을 밝혔으면, 또 마땅히 미루어 남에게까지 미쳐서, 그로 하여금 또한 옛날에 물든 더러움을 제거함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止는 반드시 이에 이르러 옮기지 않는 뜻이요, 至善은 事理의 當然한 표준이다. 이는 明明德과 新民을 다 마땅히 至善의 경지에 멈추어 옮기지 않음을 말한 것이니, 반드시 그 天理의 極을 다함이 있고, 一毫라도 人慾의 사사로움이 없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大學』의 綱領이다.

 

知止而后122)有定이니 定而后能靜하고 靜而后能安하고 安而后能慮하고 慮而后能得이니라.

그칠 데를 안 뒤에 定함이 있으니, 定한 뒤에 고요하고, 고요한 뒤에 편안하고, 편안한 뒤에 생각하고, 생각한 뒤에 얻는다.

 

止者는 所當止之地니 卽至善之所在也니 知之면 則志有定向이라 靜은 謂心不妄123)動이요 安은 謂所處而安이요 慮는 謂處事精詳이요 得은 謂得其所止라.

止는 마땅히 그쳐야 할 바의 곳이니, 바로 至善이 있는 곳이다. 이것을 안다면 뜻이 定한 방향이 있을 것이다. 靜은 마음이 망령되이 動하지 않음을 이르고, 安은 처한 바에 편안함을 이르고, 慮는 일을 처리하기를 정밀하고 상세히 함을 이르고, 得은 그 그칠 바를 얻음을 이른다.

 

物有本末하고 事有終始하니 知所先後면 則近道矣리라.

물건에는 本과 末이 있고, 일에는 終과 始가 있으니, 먼저 하고 뒤에 할 것을 알면 道에 가까울 것이다.

 

明德爲本이요 新民爲末이며 知止爲始요 能得爲終이니 本始는 所先이요 末終은 所後라 此는 結上文兩節之意니라.

明德은 本이 되고, 新民은 末이 되며, 知止는 始가 되고, 能得은 終이 되니, 本과 始는 먼저 해야 할 것이요, 末과 終은 뒤에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위 글의 두 節의 뜻을 맺은 것이다.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는 先治其國하고 欲治其國者는 先齊其家하고 欲齊其家者는 先修其身하고 欲修其身者는 先正其心하고 欲正其心者는 先誠其意하고欲誠其意者는 先致其知하니 致知는 在格物하니라.

옛날에 明德을 천하에 밝히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몸을 닦고, 그 몸을 닦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성실히 하고, 그 뜻을 성실히 하고자 하는 자는 먼저 그 知識을 지극히 하였으니, 지식을 지극히 함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에 있다.

 

明明德於天下者는 使天下之人으로 皆有以明其明德也라 心者는 身之所主也라 誠은 實也요 意者는 心之所發也니 實其心之所發하여 欲其必自慊124)而無自欺也라 致는 推極也요 知는 猶識也니 推極吾之知識하여 欲其所知無不盡也라 格은 至也요 物은 猶事也니 窮至事物之理하여 欲其極處無不到125)也라 此八者는 大學之條目也라.

明德을 천하에 밝힌다는 것은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그 明德을 밝힘이 있게 하는 것이다. 心은 몸의 주장하는 바이다. 誠은 성실함이요, 意는 마음의 發하는 바이니, 그 마음의 發하는 바를 성실히 하여, 반드시 스스로 만족하고 스스로 속임이 없고자 하는 것이다. 致는 미루어 지극히 함이요, 知는 識과 같으니, 나의 知識을 미루어 지극히 하여 그 아는 바가 다하지 않음이 없고자 하는 것이다. 格은 이르름이요, 物은 事와 같으니,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그 極處가 이르지 않음이 없고자 하는 것이다. 이 여덟 가지는『大學』의 條目이다.

 

物格而后知至하고 知至而后意誠하고 意誠而后心正하고 心正而后身修하고 身修而后家齊하고 家齊而后國治하고 國治而后天下平이니라.

사물의 이치가 이른 뒤에 지식이 지극해지고, 지식이 지극해진 뒤에 뜻이 성실해지고, 뜻이 성실해진 뒤에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 몸이 닦아지고, 몸이 닦아진 뒤에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집안이 가지런한 뒤에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 천하가 平해진다.

 

物格者는 物理之極處가 無不到也요 知至者는 吾心之所知가 無不盡也라 知旣盡이면 則意可得而實矣요 意旣實이면 則心可得而正矣라 修身以上은 明明德之事也요 齊家以下는 新民之事也라 物格知至는 則知所止矣요 意誠以下는 則皆得所止之序也라.

格物은 物理의 지극한 곳이 이르지 않음이 없음이요, 至知는 내 마음의 아는 바가 극진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지식이 이미 극진해지면 뜻이 성실해질 수 있고, 뜻이 이미 성실해지면 마음이 바르게 될 수 있다. 修身이상은 明明德의 일이요, 齊家이하는 新民의 일이다. 格物과 至知는 그칠 바를 아는 것이요, 意誠 이하는 모두 그칠 바를 얻는 차례이다.

 

自天子로 以至於庶人히 壹是皆以修身爲本이니라.

天子로부터 庶人에 이르기까지 모두 修身을 근본으로 삼는다.

 

壹是는 一切也라 正心以上은 皆所以修身也요 齊家以下는 則擧此而措126)之耳라.

壹是는 一切이다. 正心 이상은 다 修身하는 것이요, 齊家 이하는 이것을 들어 둘 뿐이다.

 

其本亂而末治者否127)矣며 其所厚128)者薄129)이요 而其所薄者厚는 未之有也니라.

그 근본이 어지럽고 끝이 다스려지는 자는 없으며, 厚하게 할 것에 薄하게 하고서 薄하게 할 것에 厚하게 하는 자는 있지 않다.

 

本은 謂身也요 所厚는 謂家也라 此兩節은 結上文兩節之意니라.

本은 몸을 이르고, 厚하게 할 것은 집안을 이른다. 이 두 節은 위 글의 두 節의 뜻을 맺은 것이다.

 

右는 經一章이니 蓋孔子之言을 而曾子述之하시고 其傳十章은 則曾子之意를而門人記之也라 舊本에 頗130)有錯131)簡일새 今因程子所定하고 而更考經文하여 別爲序次如左하노라.

右는 經 1章이니, 孔子께서 말씀하신 것을 曾子가 記述하셨고, 傳 10章은 曾子의 뜻을 門人이 기록한 것이다. 舊本에 자못 錯簡이 있으므로, 이제 程子께서 정한 것을 따르고, 다시 經文을 상고하여 별도로 차례를 만들기를 左와 같이 하였다.

 

凡傳文은 雜引經傳하여 若無統紀라 然이나 文理接續하고 血脈132)貫通하여 深淺始終이 至爲精密하니 熟讀詳味하면 久當見之일새 今不盡釋也하노라.

모든 傳文은 經傳을 섞어 인용하여 統紀가 없는 듯하나, 文理가 이어지고 血脈이 관통하여, 깊고 얕음과 始와 終이 지극히 정밀하니, 익숙히 읽고 자세히 음미한다면, 오래되면 마땅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다 해석하지 않는다.

 

傳 一章

 

康誥133)曰 克134)明德이라하며,

『康誥』에 이르기를 ‘능히 德을 밝힌다.’ 하였으며,

 

康誥는 周書라 克은 能也라.

『康誥』는 周書이다. 克은 能함이다.

 

太甲曰 顧135)136)天之明命이라하며,

『太甲』에 이르기를 ‘이 하늘의 明命을 돌아본다.’ 하였으며,

 

太甲은 商書라 顧는 謂常目在之也라 諟는 猶此也니 或曰 審也라 天之明命은 卽天之所以與我而我之所以爲德者也니 常目在之면 則無時不明矣리라.

『太甲』은 商書이다. 顧는 항상 눈이 거기에 있음을 말한다. 諟는 此와 같으니, 혹은 살피는 것이라고 한다. 하늘의 明命은 바로 하늘이 나에게 주어서 내가 德으로 삼은 것이니, 항상 눈이 여기에 있으면 때마다 밝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帝典曰 克明峻137)德이라하니,

『帝典』에 이르기를 ‘능히 큰 德을 밝힌다.’ 하였으니,

 

帝典은 堯典이니 虞138)書라 峻은 大也라.

『帝典』은『堯典』이니 虞書이다. 峻은 큼이다.

 

皆自明也니라.

모두 스스로 밝히는 것이다.

 

結所引書皆言自明己德之意니라.

인용한 바의 글이 모두 스스로 자기의 德을 밝히는 뜻을 말했음을 맺은 것이다.

 

右는 傳之首章이니 釋明明德하니라.

右는 傳文의 首章이니, 明明德을 해석하였다.

 

此通下三章至止於信하여 舊本에 誤在沒139)世不忘之下하니라.

이로부터 아래 三章의 止於信까지를 통하여 舊本에 잘못되어 沒世不忘의 아래에 있었다.

 

傳 二章

 

湯之盤140)141)曰 苟142)日新이어든 日日新하고 又日新이라하며,

湯王의 盤銘에 이르기를 ‘진실로 어느 날에 새로워졌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나날이 새롭게 하라!’ 하였으며,

 

盤은 沐浴之盤也요 銘은 名其器以自警之辭也라 苟는 誠也라 湯이 以人之洗143)144)其心以去惡은 如沐浴其身以去垢145)라 故로 銘其盤이라 言 誠能一日에 有以滌其舊染之汚而自新이면 則當因其已新者하여 而日日新之하고 又日新之하여 不可略有間斷也니라.

盤은 沐浴하는 그릇이요, 銘은 그 그릇에 이름하여 스스로 경계하는 말이다. 苟는 진실로이다. 湯王은 사람이 그 마음을 깨끗이 씻어서 惡을 제거하는 것은 마치 그 몸을 沐浴하여 때를 버리는 것과 같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그 그릇에 銘한 것이다. 진실로 능히 하루에 그 옛날에 물든 더러움을 씻어서 스스로 새로워짐이 있으면, 마땅히 이미 새로워진 것을 인하여 나날이 새롭게 하고, 또 나날이 새롭게 하여, 조금이라도 間斷함이 있어서는 안 됨을 말씀한 것이다.

 

康誥曰 作新民이라하며,

『康誥』에 이르기를 ‘새로워지는 백성을 振作하라!’ 하였으며,

 

146)之舞147)之之謂作이니 言振起其自新之民也라.

북치고 춤추게 하는 것을 作이라고 이르니, 스스로 새로워지는 백성을 振作함을 말한 것이다.

 

詩曰 周雖舊邦148)이나 其命維新이라하니,

『詩經』에 이르기를 ‘周나라가 비록 옛 나라이나, 그 命이 새롭다.’ 하였으니,

 

詩는 大雅文王之篇이라 言 周國雖舊나 至於文王하여 能新其德以及於民하여 而始受天命也라.

詩는「大雅 ․ 文王篇」이다. 周나라가 비록 옛 나라이나, 文王에 이르러 능히 그 德을 새롭게 하여 백성에게까지 미쳐서 비로소 天命을 받았음을 말한 것이다.

 

是故로 君子는 無所不用其極이니라.

이러므로 君子는 그 極을 쓰지 않는 바가 없는 것이다.

 

自新, 新民을 皆欲止於至善也라.

自新과 新民을 다 至善에 그치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右는 傳之二章이니 釋新民하니라.

右는 傳文의 2章이니, 新民을 해석하였다.

 

傳 三章

 

詩云 邦畿149)千里여 惟民所止라하니라.

『詩經』에 이르기를 ‘나라의 畿內 千里여, 백성들이 멈추어 사는 곳이다.’ 하였다.

 

詩는 商頌玄鳥之篇이라 邦畿는 王者之都也요 止는 居也니 言物各有所當止之處也라.

詩는「商頌 ․ 玄鳥篇」이다. 邦畿는 王者의 都邑이요, 止는 居함이니, 물건은 각기 마땅히 그쳐야 할 곳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詩云 緡150)151)黃鳥여 止于丘隅라하여늘 子曰 於止에 知其所止로소니可以人而不如鳥乎아하시니라.

『詩經』에 이르기를 ‘緡蠻히 우는 黃鳥여, 丘隅에 멈춘다.’ 하거늘,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칠 때에 그 그칠 곳을 아니, 사람으로서 새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하셨다.

 

詩는 小雅緡蠻之篇이라 緡蠻은 鳥聲이라 丘隅는 岑152)153)之處라 子曰以下는 孔子說詩之辭니 言人當知所當止之處也라.

詩는「小雅 ․ 緡蠻篇」이다. 緡蠻은 새 울음소리이다. 丘隅는 산이 깊고 숲이 울창한 곳이다. 子曰 이하는 孔子께서『詩經』을 해석한 말씀이니, 사람은 마땅히 그쳐야 할 곳을 알아야 함을 말씀한 것이다.

 

詩云 穆154)穆文王이여 於155)156)熙敬止라하니 爲人君엔 止於仁하시고 爲人臣엔 止於敬하시고 爲人子엔 止於孝하시고 爲人父엔 止於慈하시고 與國人交엔 止於信이러시다.

『詩經』에 이르기를 ‘穆穆하신 文王이여, 아! 계속하여 밝혀서 공경하여 그쳤다.’ 하였으니, 人君이 되어서는 仁에 그치시고, 人臣이 되어서는 敬에 그치시고, 人子가 되어서는 孝에 그치시고, 人父가 되어서는 慈에 그치시고, 國人과 더불어 사귐엔 信에 그치셨다.

 

詩는 文王之篇이라 穆穆은 深遠之意라 於는 歎美辭라 緝은 繼續也요 熙는 光明也라 敬止는 言其無不敬而安所止也라 引此而言 聖人之止가 無非至善이로되 五者는 乃其目之大者也라 學者於此에 究其精微之蘊157)하고 而又推類以盡其餘하면 則於天下之事에 皆有以知其所止而無疑矣리라.

詩는「文王篇」이다. 穆穆은 深遠한 뜻이다. 於는 아름다움을 감탄하는 말이다. 緝은 계속함이요, 熙는 光明함이다. 敬止는 공경하지 않음이 없어서 그치는 바에 편안함을 말한다. 이것을 인용하여 聖人의 그침은 至善 아님이 없음을 말한 것이니, 이 다섯 가지는 바로 그 條目의 큰 것이다. 배우는 자가 이에 대하여 그 精微의 깊음을 연구하여, 또 類推하여 그 나머지를 다한다면, 天下의 일에 대하여 모두 그 그칠 데를 알아 의심함이 없을 것이다.

 

詩云 瞻158)彼淇159)160)한대 菉161)竹猗162)猗로다 有斐163)君子여 如切如磋164)하며 如琢165)如磨166)로다 瑟167)兮僩168)兮며 赫兮喧169)兮니 有斐君子여 終不可諠170)兮라하니 如切如磋者는 道171)學也요 如琢如磨者는 自修也요 瑟兮僩兮者는 恂172)173)也요 赫兮喧兮者는威儀也요 有斐君子終不可諠兮者는 道盛德至善을 民之不能忘也니라.

『詩經』에 이르기를 ‘저 淇水 모퉁이를 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구나! 문채나는 君子여, 잘라놓은 듯하고, 간 듯하며, 쪼아놓은 듯하고, 간듯하다.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점잖으니, 문채나는 君子여, 끝내 잊을 수 없다.’ 하였으니, 如切如磋는 학문을 말한 것이요, 如琢如磨는 스스로 행실을 닦음이요, 瑟兮僩兮는 마음이 두려워함이요. 赫兮喧兮는 겉으로 드러나는 威儀요, 문채나는 君子여 끝내 잊을 수 없다는 것은 盛德과 至善을 백성이 능히 잊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詩는 衛風淇澳之篇이라 淇는 水名이요 澳은 隈174)也라 猗猗는 美盛貌니 興也175)라 斐는 文貌라 切以刀鋸176)하고 琢以椎177)178)하니 皆裁物使成形質也요 磋以鑢179)180)하고 磨以沙石하니 皆治物使其滑181)182)也라 治骨角者는 旣切而復磋之하고 治玉石者는 旣琢而復磨之하니 皆言其治之有緖而益致其精也라 瑟은 嚴密之貌요 僩은 武毅183)之貌라 赫喧은 宣著盛大之貌라 諠은 忘也라 道는 言也라 學은 謂講習討論之事요 自修者는 省察克治之功이라 恂慄은 戰懼也라 威는 可畏也요 儀는 可象184)也라 引詩而釋之하여 以明明明德者之止於至善이라 道學, 自修는 言其所以得之之由요 恂慄, 威儀는 言其德容表裏之盛이니 卒乃指其實而歎美之也니라.

詩는「衛風 ․ 淇澳篇」이다. 淇는 물 이름이요, 澳는 모퉁이이다. 猗猗는 아름답고 성한 모양이니, 興이다. 斐는 문채나는 모양이다. 切은 칼과 톱으로써 하고, 琢은 망치와 끌로써 하니, 모두 물건을 재단하여 形質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磋는 줄과 대패로써 하고, 磨는 모래와 돌로써 하니, 모두 물건을 다스려서 매끄럽고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뼈와 뿔을 다스리는 자는 이미 잘라놓고 다시 이것을 갈며, 玉과 돌을 다스리는 자는 이미 쪼아놓고 다시 가니, 모두 그 다스림에 실마리가 있어 더욱 그 精함을 지극히 함을 말한 것이다. 瑟은 엄밀한 모양이요, 僩은 굳센 모양이다. 赫 · 喧은 드러나고 盛大한 모양이다. 諠은 잊음이다. 道는 말함이다. 學은 講習하고 討論하는 일을 이르고, 自修는 省察하고 이겨 다스리는 공부이다. 恂慄은 두려워함이다. 威는 두려울 만함이요, 儀는 본받을 만함이다. 『詩經』을 인용하고 이것을 해석하여, 明明德하는 자의 止於至善을 밝힌 것이다. 道學과 自修는 이것을 얻게 된 所以의 이유를 말한 것이요, 恂慄과 威儀는 德容의 表裏의 성함을 말한 것이니, 마침내 그 실제를 가리켜, 歎美한 것이다.

 

詩云 於戱185)라 前王不忘이라하니 君子는 賢其賢而親其親하고 小人은 樂其樂而利其利하나니 此以沒世不忘也니라.

『詩經』에 이르기를 ‘아아! 前王을 잊지 못한다.’ 하였으니, 君子는 그(前王) 어짊을 어질게 여기고, 그 친한 이를 친히 여기며, 小人은 그 즐겁게 해 주심을 즐거워하고, 그 이롭게 해 주심을 이롭게 여기니, 이 때문에 세상에 없어도 잊지 못하는 것이다.

 

詩는 周頌烈文篇이라 於戱는 歎辭라 前王은 謂文武也라 君子는 謂其後賢後王이요 小人은 謂後民也라 此는 言 前王所以新民者 止於至善하여 能使天下後世로 無一物不得其所하니 所以旣沒世而人思慕之하여 愈久而不忘也라 此兩節은 呤歎淫佚186)187)하여 其味深長하니 當熟玩188)之니라.

詩는「周頌 ․ 烈文篇」이다. 於戱는 감탄하는 말이다. 前王은 文王 · 武王을 이른다. 君子는 後賢과 後王을 이르고, 小人은 後民을 이른다. 이는 前王이 백성을 새롭게 한 것이 至善에 그쳐서 능히 天下와 後世로 하여금 한 물건이라도 제 곳을 얻지 못함이 없게 하였다. 이 때문에 이미 <돌아가시어> 세상에 없는데도 사람들이 그를 思慕하여 더욱 오래도록 잊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이 두 節은 詠嘆하고 淫佚하여 그 맛이 깊고 기니, 마땅히 익숙히 구경하여야 한다.

 

右는 傳之三章이니 釋止於至善하니라.

右는 傳文의 3章이니, 止於至善을 해석하였다.

 

此章內에 自引淇澳詩以下는 舊本에 誤在誠意章下하니라.

이 章 안에 「淇澳詩」를 인용함으로부터 이하는 舊本에 잘못되어 誠意章 아래에 있었다.

 

傳 四章

 

子曰 聽訟189)이 吾猶190)人也나 必也使無訟乎인저하시니 無情者不得盡其辭는 大畏民志니 此謂知本이니라.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訟事를 다스림이 내 남과 같이 하나, 반드시 백성들로 하여금 訟事함이 없게 하겠다.’ 하셨으니, 實情이 없는 자가 그 거짓말을 다하지 못하게 함은 백성의 마음을 크게 두렵게 하기 때문이니, 이것을 일러 근본을 안다고 하는 것이다.

 

猶人은 不異於人也라 情은 實也라 引夫子之言하여 而言 聖人이 能使無實之人으로 不敢盡其虛誕191)之辭는 蓋我之明德旣明하여 自然有以畏服民之心志라 故로 訟不待聽而自無也라 觀於此言하면 可以知本末之先後矣리라.

猶人은 남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情은 실제이다. 夫子의 말씀을 인용하여, 聖人이 능히 실제가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히 그 虛誕한 말을 다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明德이 이미 밝아져서 자연히 백성들의 心志를 두렵게 하고 복종시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송사를 다스리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저절로 없어짐을 말한 것이다. 이 말씀을 본다면 本末의 先後를 알 수 있을 것이다.

 

右는 傳之四章이니 釋本末하니라.

右는 傳文의 4章이니, 本末을 해석하였다.

 

此章은 舊本에 誤在止於信下하니라.

이 章은 舊本에 잘못되어 止於信 아래에 있었다.

 

(此謂知本)

程子曰 衍192)文也라.

程子께서 말씀하였다. “衍文이다.”

 

傳 五章

 

此謂知之至也니라.

이것을 일러 지식이 지극하다고 하는 것이다.

 

此句之上에 別有闕文이요 此特其結語耳라.

이 句의 위에 별도로 빠진 글이 있고, 이것은 다만 그 결론한 말일 뿐이다.

 

右는 傳之五章이니 蓋釋格物致知之義而今亡矣라.

右는 傳文의 5章이니, 格物 · 致知의 뜻을 해석하였는데, 이제 없어졌다.

 

此章은 舊本에 通下章하여 誤在經文之下하니라.

이 章은 舊本에 아래 章을 통하여 잘못되어 經文의 아래에 있었다.

 

間嘗竊取程子之意하여 以補之하니 曰 所謂致知在格物者는 言 欲致吾之知인댄 在卽物而窮其理也라 蓋人心之靈이 莫不有知요 而天下之物이 莫不有理언마는 惟於理에 有未窮이라 故로 其知有不盡也니 是以로 大學始敎에 必使學者로 卽凡天下之物하여 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하여 以求至乎其極하나니 至於用力之久而一旦193)194)然貫通焉이면 則衆物之表裏精粗195)가 無不到하고 而吾心之全體大用이 無不明矣리니 此謂物格이며 此謂知之至也니라.

근간에 내 일찍이 程子의 뜻을 취하여 빠진 부분을 다음과 같이 보충하였다. “이른바 지식을 지극히 함이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에 있다는 것은, 나의 지식을 지극히 하고자 한다면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궁구함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人心의 영특함은 앎이 있지 않음이 없고, 천하의 사물은 이치가 있지 않음이 없건마는, 다만 이치에 대하여 궁구하지 않음이 있기 때문에 그 앎이 다하지 못함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太學에서 처음 가르칠 때에 반드시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모든 천하의 사물에 나아가서 그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인하여 더욱 궁구해서 그 極에 이름을 구하지 않음이 없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힘쓰기를 오래해서 하루아침에 豁然히 관통함에 이르면, 모든 사물의 表裏와 精粗가 이르지 않음이 없을 것이요, 내 마음의 全體와 大用이 밝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이것을 格物이라 이르며, 이것을 知之至라 이른다.”

 

傳 六章

 

所謂誠其意者는 毋196)自欺也니 如惡惡臭하며 如好好色이 此之謂自謙(慊)이니 故로 君子는 必愼其獨也니라.

이른바 그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니, 惡을 미워하기를 惡臭를 미워하는 것과 같이 하며, 善을 좋아하기를 好色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여야 하니, 이것을 自慊이라 이른다. 그러므로 君子는 반드시 그 홀로 있는 것을 삼가는 것이다.

 

誠其意者는 自修之首也라 毋者는 禁止之辭라 自欺云者는 知爲善以去惡이로되 而心之所發이 有未實也라 謙은 快也며 足也라 獨者는 人所不知而己所獨知之地也라 言 欲自修者知爲善以去其惡이어든 則當實用其力하여 而禁止其自欺하여 使其惡惡則如惡惡臭하고 好善則如好好色하여 皆務決去而求必得之하여 以自快足於己요 不可徒苟且以徇197)外而爲人也라 然이나 其實與不實은 蓋有他人所不及知而己獨知之者라 故로 必謹之於此하여 以審其幾198)焉이니라.

그 뜻을 성실히 하는 것은 自修의 첫 머리이다. 毋는 금지하는 말이다. 自欺는 善을 하고 惡을 제거해야 함을 알되, 마음의 發하는 바가 성실하지 못함이 있는 것이다. 謙은 快함이며, 만족함이다. 獨은 남은 알지 못하고, 자기만이 홀로 아는 바의 곳이다. 스스로 닦고자 하는 자는 善을 하고 惡을 제거해야 함을 알았으면, 마땅히 실제로 그 힘을 써서 自欺함을 금지하여, 가령 惡을 미워함에는 惡臭를 미워하는 것과 같이 하고, 善을 좋아함에는 好色을 좋아하는 것과 같이 하여, 모두 힘써 결단하여 버리고, 구하여 반드시 얻어서 스스로 자기에게 만족하게 할 것이요, 한갓 구차히 外面을 따라 남을 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성실하고 성실하지 못함은 남은 미처 알지 못하고 자기만이 홀로 아는 데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것을 삼가 그 幾微를 살펴야 함을 말씀한 것이다.

 

小人閒居에 爲不善하되 無所不至하다가 見君子而后에 厭199)然揜200)其不善하고 而著其善하나니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이니 則何益矣리오 此謂 誠於中이면 形於外라 故로 君子는 必愼其獨也니라.

小人이 한가로이 居할 때에 不善한 짓을 하되 이르지 못하는 바가 없다가, 君子를 본 뒤에 겸연쩍게 그 不善함을 가리고 善함을 드러내나니, 남들이 자기를 보기를 자신의 肺腑를 보듯이 할 것이니, 그렇다면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이것을 일러, ‘中心에 성실하면 外面에 나타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君子는 반드시 그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것이다.

 

閒居는 獨處也라 厭然은 消沮201)閉藏之貌라 此는 言 小人陰爲不善하고 而陽欲揜之하니 則是非不知善之當爲와 與惡之當去也로되 但不能實用其力以至此耳라 然이나 欲揜其惡而卒不可揜하고 欲詐202)爲善而卒不可許하니 則亦何益之有哉리오 此君子所以重以爲戒而必謹其獨也니라.

閒居는 홀로 거처하는 것이다. 厭然은 消沮하여 은폐하고 감추는 모양이다. 이는 小人이 속으로 不善을 하고 겉으로 이것을 감추고자 하는 것이니, 그렇다면, 善을 마땅히 해야 함과 惡을 마땅히 제거해야 함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로되, 다만 실제로 그 힘을 쓰지 못하여 이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그 惡을 가리고자 하여도 끝내 가리지 못하고, 거짓으로 善을 하고자 하여도 끝내 속일 수가 없으니, 그렇다면 또한 무슨 유익함이 있겠는가. 이는 君子가 거듭 경계하여 반드시 그 홀로 있을 때를 삼가는 까닭을 말씀한 것이다.

 

曾子曰 十目所視며 十手所指니 其嚴乎인저.

曾子께서 말씀하셨다. ‘열 눈이 보는 바이며, 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이니, 그 무섭구나!’

 

引此以明上文之意라 言 雖幽203)獨之中이라도 而其善惡之不可揜이 如此하니 可畏之甚也니라.

이것을 인용하여 위 글의 뜻을 밝힌 것이다. 비록 幽獨의 가운데라도 그 善惡을 가릴 수 없음이 이와 같으니, 두려울 만함이 심함을 말씀한 것이다.

 

富潤屋이요 德潤身이니 心廣體胖204)이라 故로 君子는 必誠其意니라.

富는 집을 윤택하게 하고, 德은 몸을 윤택하게 하니, <德이 있으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펴진다. 그러므로 君子는 반드시 그 뜻을 성실히 하는 것이다.

 

胖은 安舒205)也라 言 富則能潤屋矣요 德則能潤身矣라 故로 心無愧怍206)이면 則廣大寬平하여 而體常舒泰하니 德之潤身者然也라 蓋善之實於中而形於外者如此라 故로 又言此以結之하니라.

胖은 편안하고 펴짐이다. 富하면 집을 윤택하게 하고, 德이 있으면 몸을 윤택하게 한다. 그러므로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廣大하고 寬平하여 몸이 항상 펴지고 편안하니, 德이 몸을 윤택하게 함이 그러한 것이다. 善이 中心에 성실하여 外面에 나타남이 이와 같다. 그러므로 또 이것을 말씀하여 맺은 것이다.

 

右는 傳之六章이니 釋誠意하니라.

右는 傳文의 6章이니, 誠意를 해석하였다.

 

經曰 欲誠其意인댄 先致其知라하고 又曰 知至而后意誠이라하니 蓋心體之明이 有所未盡이면 則其所發이 必有不能實用其力하여 而苟焉以自欺者라 然이나 或已明而不謹乎此하면 則其所明이 又非己有하여 而無以爲進德之基라 故로 此章之指를 必承上章而通考之然後에 有以見其用力之始終이니 其序不可亂而功不可闕이 如此云이라.

經文에 이르기를 ‘그 뜻을 성실히 하고자 한다면 먼저 그 지식을 지극히 하라.’ 하였고, 또 말하기를 ‘지식이 지극한 뒤에 뜻이 성실해진다.’ 하였으니, 心體의 밝음이 未盡한 바가 있으면 그 發하는 바가 반드시 실제로 그 힘을 쓰지 못하여 구차하게 스스로 속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혹 이미 밝게 알았다 하더라도 이것을 삼가지 않으면 그 밝힌 것이 또 자기의 소유가 아니어서 德에 나아가는 기초로 삼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 章의 뜻은 반드시 윗 章을 이어서 통틀어 상고한 뒤에야 힘을 쓰는 始와 終을 볼 수 있으니, 그 순서를 어지럽힐 수 없고, 공부를 빠뜨릴 수 없음이 이와 같다.

 

傳 七章

 

所謂修身이 在正其心者는 身[心]有所忿懥207)면 則不得其正하며 有所恐懼면 則不得其正하며 有所好樂208)면 則不得其正하며 有所憂患이면 則不得其正이니라.

이른바 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는 것은 마음이 분하여 성내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恐懼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고 즐기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하며, 憂患하는 바가 있으면 그 바름을 얻지 못한다.

 

程子曰 身有之身은 當作心이라.

程子가 말씀하였다. “身有의 身은 마땅히 心이 되어야 한다.”

 

忿懥는 怒也라 蓋是四者는 皆心之用而人所不能無者라 然이나 一有之而不能察하면 則欲動情勝하여 而其用之所行이 或不能不失其正矣리라.

忿懥는 怒함이다. 이 네 가지는 모두 마음의 用이니, 사람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이것을 두고 살피지 못하면, 욕심이 動하고 情이 치우쳐서, 그 用의 행하는 바가 혹 올바름을 잃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心不在焉이면 視而不見하며 聽而不聞하며 食而不知其味니라.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心有不存이면 則無以檢209)其身이라 是以로 君子必察乎此하여 而敬以直之하니 然後에 此心常存하여 而身無不修也니라.

마음이 보전되지 못함이 있으면 그 몸을 檢束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君子는 반드시 이를 살펴서 敬하여 마음을 곧게 하니, 그러한 뒤에야 이 마음이 항상 보존되어서 몸이 닦아지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此謂修身이 在正其心이니라.

이것을 일러 ‘몸을 닦음이 그 마음을 바르게 함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右는 傳之七章이니 釋正心修身하니라.

右는 傳文의 7章이니, 正心 · 修身을 해석하였다.

 

此亦承上章하여 以起下章이라 蓋意誠이면 則眞無惡而實有善矣니 所以能存是心以檢其身이라 然이나 或但知誠意하고 而不能密察此心之存否면 則又無以直內而修身也라 自此以下는 並以舊文爲正하노라.

이 또한 윗 章을 이어서 아래 章을 일으킨 것이다. 뜻이 성실해지면 참으로 惡이 없고 진실로 善이 있을 것이니, 이 때문에 능히 마음을 보존하여 그 몸을 檢束하는 것이다. 그러나 혹 다만 誠意만을 알고, 이 마음의 보존되고 보존되지 않음을 치밀히 살피지 못한다면, 또 안을 곧게 하여 몸을 닦을 수가 없다.  이로부터 이하는 모두 옛 글을 옳은 것으로 삼는다.

 

傳 八章

 

所謂齊其家 在修其身者는 人이 之其所親愛而辟210)(僻)焉하며 之其所賤惡而辟焉하며 之其所畏敬而辟焉하며 之其所哀矜211)而辟焉하며 之其所敖212)惰而辟焉하나니 故로 好而知其惡하며 惡而知其美者 天下에 鮮矣니라.

이른바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함이 몸을 닦음에 있다는 것은 사람들이 親愛하는 바에 편벽되며, 천히 여기고 미워하는 바에 편벽되며,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바에 편벽되며, 가엽게 여기고 불쌍히 여기는 바에 편벽되며, 거만하고 태만히 하는 바에 편벽된다. 그러므로 좋아하면서도 그의 나쁨을 알며, 미워하면서도 그의 아름다움을 아는 자가 천하에 적은 것이다.

 

人은 謂衆人이라 之는 猶於也요 辟은 猶偏也라 五者在人에 本有當然之則이라 然이나 常人之情은 惟其所向而不可察焉하니 則必陷於一偏하여 而身不修矣라.

人은 衆人을 이른다. 之는 於와 같고, 辟은 偏과 같다. 다섯 가지는 사람에 있어, 본래 當然한 법칙이 있으나, 常人의 情은 오직 그 향하는 대로 하고 살핌을 加하지 않으니, 그러하면 반드시 한쪽으로 빠져서 몸이 닦아지지 못할 것이다.

 

故로 諺213)有之하니 曰 人莫知其子之惡하며 莫知其苗之碩214)이라하니라.

그러므로 속담에 이러한 말이 있으니, ‘사람들이 그 자식의 惡함을 알지 못하며, 그 苗의 큼을 알지 못한다.’ 하였다.

 

諺은 俗語也라 溺愛者는 不明하고 貪得者는 無厭하니 是則偏之爲害而家之所以不齊也라.

諺은 속담이다. 사랑에 빠진 자는 밝지 못하고, 얻음을 탐하는 자는 만족함이 없으니, 이것은 편벽됨이 害가 되어 집안이 가지런해지지 못하는 것이다.

 

此謂身不修면 不可以齊其家니라.

이것을 일러 ‘몸이 닦아지지 않으면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右는 傳之八章이니 釋修身齊家니라

右는 傳文의 8章이니, 修身 ․ 齊家를 해석하였다.

 

傳 九章

 

所謂治國이 必先齊其家者는 其家를 不可敎요 而能敎人者無之하니 故로 君子는 不出家而成敎於國하나니 孝者는 所以事君也요 弟215)者는 所以事長也요慈者는 所以使衆也니라.

이른바 나라를 다스림이 반드시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함에 있다는 것은 그 집안을 가르치지 못하고 능히 남을 가르치는 자는 없다. 그러므로 君子는 집을 나가지 않고 나라에 가르침을 이루는 것이다. 孝는 군주를 섬기는 것이요, 弟는 어른을 섬기는 것이요, 慈는 여러 백성들을 부리는 것이다.

 

修身則家可敎矣라 孝弟慈는 所以修身而敎於家者也라 然而國之所以事君事長使衆之道가 不外乎此하니 此所以家齊於上而敎成於下也라.

몸이 닦아지면 집안을 가르칠 수 있다. 孝 · 弟 · 慈는 몸을 닦아 집안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의 군주를 섬기고 어른을 섬기고 백성을 부리는 바의 道가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이는 집안이 위에서 가지런해짐에 가르침이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康誥曰 如保赤子라하니 心誠求之면 雖不中이나 不遠矣니 未有學養子而后嫁216)者也니라.

「康誥」에 이르기를 ‘赤子를 보호하듯이 한다.’ 하였으니, 마음에 진실로 구하면 비록 꼭 맞지는 않으나 멀지 않을 것이다. 자식 기르는 것을 배운 뒤에 시집가는 자는 있지 않다.

 

此는 引書而釋之하여 又明立敎之本이 不假强爲요 在識其端而推廣之耳니라.

이는『書經』을 인용하고 이것을 해석하여, 또 가르침을 세우는 근본이 억지로 함을 빌리지 않고, 그 단서를 알아서 미루어 넓힘에 있을 뿐임을 밝힌 것이다.

 

一家仁이면 一國興仁하고 一家讓이면 一國興讓하고 一人貪217)218)하면一國作亂하나니 其機如此하니 此謂一言僨219)事며 一人定國이니라.

한 집안이 仁하면 한 나라가 仁을 興起하고, 한 집안이 사양하면 한 나라가 사양함을 興起하고, 한 사람이 탐하고 어그러지면 한 나라가 亂을 일으키니, 그 기틀이 이와 같다. 이것을 일러 ‘한 마디 말이 일을 그르치며, 한 사람이 나라를 안정시킨다.’고 하는 것이다.

 

一人은 謂君也라 機는 發動所由也라 僨은 覆220)敗也라 此는 言敎成於國之效라.

一人은 君을 이른다. 機는 發動함이 말미암는 것이다. 僨은 전복되고 패함이다. 이는 가르침이 나라에 이루어지는 효험을 말씀한 것이다.

 

堯舜이 帥221)天下以仁하신대 而民從之하고 桀222)223)帥天下以暴한대 而民從之하니 其所令이 反其所好면 而民不從하나니 是故로 君子는 有諸己而後求諸人하며 無諸己而後非諸人하나니 所藏乎身이 不恕요 而能喩224)諸人者 未之有也니라.

堯 · 舜이 천하를 仁으로써 거느리시자 백성들이 그를 따랐고, 桀 · 紂가 천하를 포악함으로써 거느리자 백성들이 따랐으니, 그 명령하는 바가 자기(君主)의 좋아하는 바와 반대되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다. 이러므로 君子는 자기 몸에 善이 있은 뒤에 남에게 善을 요구하며, 자기 몸에 惡이 없는 뒤에 남의 惡을 비난하는 것이다. 자기 몸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 恕하지 못하고서 능히 남을 깨우치는 자는 있지 않다.

 

此는 又承上文一人定國而言이라 有善於己然後에 可以責人之善이요 無惡於己然後에 可以正人之惡이니 皆推己以及人이니 所謂恕也라 不如是면 則所令이 反其所好하여 而民不從矣라 喩는 曉也라.

이는 또 위 글에 ‘한 사람이 나라를 안정시킨다.’는 것을 이어서 말씀한 것이다. 자기 몸에 善이 있은 뒤에 남의 善을 責할 수 있고, 자기 몸에 惡이 없는 뒤에 남의 惡을 바로잡을 수 있다. 이는 모두 자기를 미루어 남에게 미치는 것이니, 이른바 恕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그 명령하는 바가 자기가 좋아하는 바와 반대가 되어, 백성들이 따르지 않을 것이다. 喩는 깨달음이다.

 

故로 治國이 在齊其家니라.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림이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함에 있는 것이다.

 

通結上文이라.

위 글을 통하여 맺은 것이다.

 

詩云 桃之夭225)夭여 其葉蓁226)蓁이로다 之子于歸227)여 宜其家人이라하니 宜其家人而后에 可以敎國人이니라.

『詩經』에 이르기를 ‘복숭아꽃이 예쁘고 예쁨이여, 그 잎이 무성하구나! 이 아가씨의 시집감이여, 그 집안 식구에게 마땅(和合)하다.’ 하였으니, 그 집안 식구에게 마땅한 뒤에 나라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詩는 周南桃228)夭之篇이라 夭夭는 少好貌요 蓁蓁은 美盛貌니 興也라 之子는 猶言是子니 此는 指女子之嫁者而言也라 婦人謂嫁曰歸라 宜는 猶善也라.

詩는「周南 ․ 桃夭篇」이다. 夭夭는 어리고 예쁜 모양이요. 蓁蓁은 아름답고 성한 모양이니, 興이다. 之子는 是子라는 말과 같으니, 이는 女子의 시집가는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婦人이 시집가는 것을 歸라 한다. 宜)는 善(좋음)과 같다.

 

詩云 宜兄宜弟라하니 宜兄宜弟而后에 可以敎國人이니라.

『詩經』에 이르기를 ‘형에게도 마땅하고, 아우에게도 마땅하다.’ 하였으니, 형에게 마땅하고 아우에게 마땅한 뒤에야 나라 사람을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詩는 小雅蓼229)230)篇이라.

詩는 「小雅 ․ 蓼蕭篇」이다.

 

詩云 其儀不忒231)이라 正是四國이라하니 其爲父子兄弟足法而后에 民法之也니라.

『詩經』에 이르기를 ‘그 威儀가 어그러지지 않는지라, 이 사방 나라를 바르게 한다.’ 하였으니, 그 父子와 兄弟 된 자가 족히 본받을 만한 뒤에야 백성들이 본받는 것이다.

 

詩는 曹風鳲232)233)篇이라 忒은 差也라.

詩는「曹風 ․ 鳲鳩篇」이다. 忒은 어그러짐이다.

 

此謂治國이 在齊其家니라.

이것을 일러 ‘나라를 다스림이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함에 있다.’는 것이다.

 

此三引詩는 皆以詠歎上文之事요 而又結之如此하여 其味深長하니 最宜潛玩이니라.

이 세 번 인용한 詩는 모두 위 글의 일을 詠嘆하였고, 또 맺기를 이와 같이 하여 그 맛이 깊고 기니, 가장 마땅히 마음을 잠겨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右는 傳之九章이니 釋齊家治國하니라.

右는 傳文의 9章이니, 齊家 · 治國을 해석하였다.

 

傳 十章

 

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는 上老老而民興孝하며 上長長而民興弟하며 上恤孤而民不倍234)하나니 是以로 君子有絜235)236)之道也니라.

이른바 천하를 平하게 함이 그 나라를 다스림에 있다는 것은, 윗사람이 늙은이를 늙은이로 대우함에 백성들이 孝를 흥기하며, 윗사람이 어른을 어른으로 대우함에 백성들이 弟를 흥기하며, 윗사람이 孤兒를 구휼함에 백성들이 저버리지 않는다. 이러므로 君子는 矩로 재는 道가 있는 것이다.

 

老老는 所謂老吾老也라 興은 謂有所感發而興起也라 孤者는 幼而無父之稱이라 絜은 度237)也라 矩는 所以爲方也라 言 此三者는 上行下效가 捷238)於影響239)하니 所謂家齊而國治也니 亦可以見人心之所同하여 而不可使有一夫之不獲240)矣라 是以로 君子必當因其所同하여 推以度物하여 使彼我之間으로 各得分願하면 則上下四旁이 均齊方正하여 而天下平矣리라.

老老는『孟子』에 이른바 ‘내 노인을 노인으로 섬긴다.’는 것이다. 興은 感發한 바가 있어 興起함을 이른다. 孤는 어려서 아버지가 없는 자의 칭호이다. 絜은 헤아림이다. 矩는 네모진 것을 만드는 기구이다. 이 세 가지는 윗사람이 행하면 아랫사람이 본받는 것이 그림자와 메아리보다도 빠르니, 이른바 집안이 가지런해짐에 나라가 다스려진다는 것이니, 또한 사람 마음이 똑같아서 한 지아비라도 살 곳을 얻지 못함이 있게 해서는 됨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君子가 반드시 마땅히 그 같은 바를 인하여 미루어 남을 헤아려서 彼我의 사이로 하여금 각기 分數와 소원을 얻게 하니, 이렇게 하면, 上下와 四方이 고르고 方正하여 천하가 平해질 것이다.

 

所惡於上으로 毋以使下하며 所惡於下로 毋以事上하며 所惡於前으로 毋以先後하며 所惡於後로 毋以從前하며 所惡於右로 毋以交於左하며 所惡於左로 毋以交於右가 此之謂絜矩之道니라.

윗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써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며, 아랫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써 윗사람을 섬기지 말며, 앞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써 뒷사람에게 加하지 말며, 뒷사람에게서 싫었던 것으로써 앞사람에게 따르지 말며, 오른쪽에게서 싫었던 것으로써 왼쪽에게 사귀지 말며, 왼쪽에게서 싫었던 것으로써 오른쪽에게 사귀지 말 것이니, 이것을 일러 矩로 재는 道라고 하는 것이다.

 

此는 覆241)解上文絜矩二字之意라 如不欲上之無禮於我어든 則必以此度下之心하여 而亦不敢以此無禮使之하며 不欲下之不忠於我어든 則必以此度上之心하여 而亦不敢以此不忠事之라 至於前後左右에 無不皆然이면 則身之所處上下四旁242)에 長短廣狹243)이 彼此如一하여 而無不方矣리니 彼同有是心而興起焉者 又豈有一夫之不獲哉리오 所操者約이나 而所及者廣하니 此는 平天下之要道也라 故로 章內之意가 皆自此而推之하니라.

이는 위 글의 絜矩 두 글자의 뜻을 반복하여 해석한 것이다. 내가 만일 윗사람이 나에게 無禮함을 원하지 않거든, 반드시 이로써 아랫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서 나 역시 감히 이 無禮함으로써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며, 아랫사람이 나에게 不忠함을 원하지 않거든, 반드시 이로써 윗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서 나 역시 이 不忠함으로써 윗사람을 섬기지 말아야 하니, 前 · 後, 左 · 右에 이르러서도 모두 그렇게 하지 않음이 없다면 몸이 처한 바의 上下와 四方에 길고 짧음과 넓고 좁음이 彼此가 똑같아서 方正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저 똑같이 이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이것을 興起하는 자가 또 어찌 한 지아비라도 살 곳을 얻지 못함이 있겠는가. 잡고 있는 바가 요약하면서도 미치는 바가 넓으니, 이는 天下를 平하는 要道이다. 그러므로 章 안의 뜻이 모두 이로부터 미루어 갔다.

 

詩云 樂只君子여 民之父母라하니 民之所好를 好之하며 民之所惡를 惡之가 此之謂民之父母니라.

『詩經』에 이르기를 ‘즐거우신 君子여, 백성의 父母이다.’ 하였으니, 백성들이 좋아하는 바를 좋아하며, 백성들이 싫어하는 바를 싫어함, 이를 일러 백성들의 父母라 하는 것이다.

 

詩는 小雅南山有臺之篇이라 只는 語助辭라 言 能絜矩而以民心爲己心이면 則是愛民如子하여 而民愛之如父母矣리라.

詩는「小雅 ․ 南山有臺篇」이다. 只는 어조사이다. 능히 絜矩하여 백성의 마음으로써 자기의 마음을 삼는다면, 이는 백성을 사랑하기를 자식과 같이 하는 것이어서 백성들이 사랑하기를 父母와 같이 할 것이다.

 

詩云 節(截244))彼南山이여 維石巖巖이로다 赫赫師尹이여 民具(俱)爾瞻이라하니 有國者는 不可以不愼이니 辟則爲天下僇245)矣니라.

『詩經』에 이르기를 ‘깎아지른 저 南山이여, 돌이 巖巖하구나! 赫赫한 太師 尹氏여, 백성들이 모두 너를 본다.’ 하였으니, 국가를 소유한 자는 삼가지 않으면 안 되니, 편벽되면 천하의 죽임이 되는 것이다.

 

詩는 小雅節南山之篇이라 節은 截然高大貌라 師尹은 周太師尹氏也라 具는 俱也요 辟은 偏也라 言 在上者는 人所瞻仰이니 不可不謹이라 若不能絜矩而好惡徇於一己之偏이면 則身弑國亡하여 爲天下之大戮矣라.

詩는「小雅 ․ 節南山篇」이다. 節은 截然히 높고 큰 모양이다. 師尹은 周나라 太師인 尹氏이다. 具는 모두이고, 辟은 편벽됨이다. 윗자리에 있는 자는 사람들이 보고 우러르는 바이니, 삼가지 않을 수 없다. 만일 絜矩하지 못해서 좋아하고 미워함을 자기 한 몸의 편벽됨에 따르게 되면, 몸이 弑害를 당하고 나라가 망하여 천하의 큰 죽임이 됨을 말씀한 것이다.

 

詩云 殷之未喪246)247)엔 克配上帝러니라 儀(宜)監于殷이어다 峻命不易248)라하니 道得衆則得國하고 失衆則失國이니라.

『詩經』에 이르기를 ‘殷나라가 民衆을 잃지 않았을 때에는 능히 上帝와 짝했었다. 그러니 마땅히 殷나라를 거울로 삼을지어다. 큰 命을 보존하기가 쉽지 않다.’ 하였으니, 민중을 얻으면 나라를 얻고, 민중을 잃으면 나라를 잃음을 말씀한 것이다.

 

詩는 文王篇이라 師는 衆也라 配는 對也니 配上帝는 言其爲天下君而對乎上帝也라 監은 視也요 峻은 大也라 不易는 言難保也라 道는 言也라 引詩而言此하여 以結上文兩節之意라 有天下者 能存此心而不失이면 則所以絜矩而與民同欲者가 自不能已矣리라.

詩는「文王篇」이다. 師는 民衆이다. 配는 대함이니, 配上帝는 천하의 군주가 되어 上帝께 대함을 말한다. 監은 봄이요, 峻은 큼이다. 不易는 보존하기 어려움을 말한다. 道는 말함이다.『詩經』을 인용하고 이것을 말하여 위 글의 두 節의 뜻을 맺은 것이다. 천하를 소유한 자가 능히 이 마음을 보존하고 잃지 않으면, 絜矩하여 백성들과 더불어 하고자 함을 함께 하는 것이 자연히 그만둘 수 없을 것이다.

 

是故로 君子는 先愼乎德이니 有德이면 此有人이요 有人이면 此有土요 有土면此有財요 有財면 此有用이니라.

이러므로 君子는 먼저 德을 삼가는 것이니, 德이 있으면 이 人民이 있고, 人民이 있으면 이 土地가 있고, 土地가 있으면 이 재물이 있고, 재물이 있으면 이 씀이 있는 것이다.

 

先謹乎德249)은 承上文不可不謹而言이라 德은 卽所謂明德이라 有人은 謂得衆이요 有土는 謂得國이라 有國이면 則不患無財用矣리라.

먼저 德을 삼간다는 것은 위 글의 不可不謹을 이어서 말한 것이다. 德은 곧 이른바 明德이란 것이다. 有人은 민중을 얻음을 이르고, 有土는 나라를 얻음을 이른다. 나라가 있으면 財用이 없음을 걱정할 것이 없을 것이다.

 

德者는 本也요 財者는 末也니,

德은 근본이요, 재물은 末이니,

 

本上文而言이라.

위 글을 근본하여 말한 것이다.

 

外本內末이면 爭民施奪이니라.

근본을 밖으로 하고 末을 안으로 하면, 백성을 다투게 하여 劫奪하는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다.

 

人君이 以德爲外하고 以財爲內하면 則是爭鬪其民하여 而施之以劫250)奪之敎也라 蓋財者는 人之所同欲이어늘 不能絜矩而欲專之면 則民亦起而爭奪矣리라.

人君이 德을 밖으로 여기고 재물을 안으로 여긴다면, 이는 백성을 爭鬪하게 하여 劫奪하는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다. 재물은 사람들이 똑같이 하고자 하는 바이니, 絜矩하지 못하여 독차지하고자 한다면 백성들 또한 일어나 다투어 빼앗게 될 것이다.

 

是故로 財聚251)則民散하고 財散則民聚니라.

이러므로 재물이 모여지면 백성이 흩어지고, 재물이 흩어지면 백성들이 모이는 것이다.

 

外本內末故로 財聚하고 爭民施奪故로 民散이라 反是면 則有德而有人矣리라.

근본을 밖으로 하고, 末을 안으로 하기 때문에 재물이 모여지는 것이요, 백성을 다투게 하여 쟁탈하는 가르침을 베풀기 때문에 백성이 흩어지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하면 德이 있어서 人民이 있게 될 것이다.

 

是故로 言悖252)而出者는 亦悖而入하고 貨悖而入者는 亦悖而出이니라.

이러므로 말이 도리에 어긋나게 나간 것은 또한 도리에 어긋나게 들어오고, 재물이 도리에 어긋나게 들어온 것은 또한 도리에 어긋나게 나가는 것이다.

 

悖는 逆也라 此는 以言之出入으로 明貨之出入也라 自先謹乎德以下로 至此는 又因財貨하여 以明能絜矩與不能者之得失也라.

悖는 어그러짐이다. 이것은 말의 나가고 들어옴을 가지고 재물의 나가고 들어옴을 밝힌 것이다. 先謹乎德 이하로부터 여기까지는 또한 財貨를 인하여 능히 絜矩한 자와 능히 絜矩하지 못한 자의 得失을 밝힌 것이다.

 

康誥曰 惟命은 不于常이라하니 道善則得之하고 不善則失之矣니라.

『康誥』에 이르기를, ‘天命은 일정한 곳에 하지 않는다.’ 하였으니, 善하면 얻고, 善하지 못하면 잃음을 말한 것이다.

 

道는 言也라 因上文引文王詩之意而申言之하니 其丁寧反覆之意 益深切矣로다.

道는 말함이다. 위 글에「文王詩」를 인용한 뜻을 인하여 거듭 말하였으니, 그 丁寧하고 반복한 뜻이 더욱 깊고 간절하다.

 

楚書曰 楚國은 無以爲寶요 惟善을 以爲寶라하니라.

『楚書』에 이르기를 ‘楚나라는 보배로 삼을 것이 없고, 오직 善人을 보배로 삼는다.’ 하였다.

 

楚書는 楚語라 言不寶金玉而寶善人也라.

楚書는『楚語』이다. 金玉을 보배로 여기지 않고 善人을 보배로 여김을 말한 것이다.

 

 

 

253)犯曰 亡人은 無以爲寶요 仁親을 以爲寶라하니라.

舅犯이 말하기를 ‘도망 온 사람은 보배로 여길 것이 없고, 어버이를 사랑함을 보배로 여긴다.’ 하였다.

 

舅犯은 晋文公舅狐254)255)이니 字子犯이라 亡人은 文公이 時爲公子하여 出亡在外也라 仁은 愛也니 事見檀弓이라 此兩節은 又明不外本而內末之意라.

舅犯은 晋나라 文公의 외삼촌인 狐偃이니, 字가 子犯이다. 亡人은 文公이 당시 公子가 되어서 나가 망명하여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仁은 사랑함이니, 이 사실은「檀弓篇」에 보인다. 이 두 節은 또 근본을 밖으로 하고 末을 안으로 하지 않는 뜻을 밝힌 것이다.

 

秦誓曰 若有一个256)臣이 斷斷兮無他技나 其心이 休257)休焉其如有容焉이라 人之有技를 若己有之하며 人之彦258)聖을 其心好之하여 不啻259)若自其口出이면 寔260)能容之라 以能保我子孫黎261)民이니 尙亦有利哉인저 人之有技를 媢262)疾以惡之하며 人之彦聖을 而違之하여 俾263)不通이면 寔不能容이라 以不能保我子孫黎民이니 亦曰殆264)哉인저.

『秦誓』에 이르기를 ‘만일 어떤 한 신하가 斷斷하고 다른 技藝가 없으나, 그 마음이 곱고 고와 용납함이 있는 듯하여, 남이 가지고 있는 技藝를 자기가 소유한 것처럼 여기며, 남의 훌륭하고 聖스러움을 그 마음에 좋아함이 자기 입에서 나온 것보다도 더한다면, 이는 능히 남을 포용하는 것이어서, 능히 나의 子孫과 黎民을 보전할 것이니, 행여 또한 이로움이 있을 것이다. 남이 가지고 있는 技藝를 시기하고 미워하며, 남의 훌륭하고 聖스러움을 어겨서 하여금 통하지 못하게 하면, 이것은 능히 포용하지 못하는 것이어서, 나의 子孫과 黎民을 보전하지 못할 것이니, 또한 위태로울진저!’

 

秦誓는 周書라 斷斷은 誠一之貌라 彦은 美士也요 聖은 通明也라 尙은 庶幾也라 媢는 忌也라 違는 拂265)戾也라 殆는 危也라.

『秦誓』는 周書이다. 斷斷은 정성스럽고 한결같은 모양이다. 彦은 아름다운 선비요, 聖은 通明함이다. 尙은 庶幾이다. 媢는 猜忌이다. 違는 어김이다. 殆는 위태로움이다.

 

唯仁人이야 放266)流之하되 迸諸四夷하여 不與同中國하나니 此謂唯仁人이야 爲能愛人하며 能惡人이니라.

오직 仁人이어야 이들을 추방하여 유배하되 사방 오랑캐의 땅으로 내쫓아, 더불어 中國에 함께 하지 않으니, 이를 일러 ‘오직 仁人이어야 능히 남을 사랑하며, 능히 남을 미워한다.’고 하는 것이다.

 

267)은 猶逐也라 言 有此媢疾之人하여 妨賢而病國이면 則仁人이 必深惡而痛絶之하나니 以其至公無私라 故로 能得好惡之正이 如此也라.

迸은 逐과 같다. 이 媢疾하는 사람이 있어서 어진 이를 방해하고 나라를 병들게 하면 仁人이 반드시 깊이 미워하고 통렬히 끊으니, 그 至公無私하기 때문에 능히 좋아하고 미워함의 올바름을 얻음이 이와 같은 것이다.

 

見賢而不能擧하며 擧而不能先이 命也요 見不善而不能退하며 退而不能遠이過也니라.

어진 이를 보고도 능히 들어 쓰지 못하며, 들어 쓰되 먼저 하지 못함이 태만함이요, 不善한 자를 보고도 능히 물리치지 못하며, 물리치되 멀리하지 못함이 과실이다.

 

命은 鄭氏云 當作慢이라하고 程子云 當作怠라하시니 未詳孰是라 若此者는 知所愛惡矣로되 而未能盡愛惡之道하니 蓋君子而未仁者也라.

命은 鄭氏(鄭玄)는 ‘마땅히 慢이 되어야 한다.’ 하고, 程子는 ‘마땅히 怠가 되어야 한다.’ 하였으니, 누가 옳은지는 상세하지 않다. 이와 같은 자는 사랑하고 미워할 바를 알되, 사랑하고 미워하는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니, 君子이되 아직 仁하지 못한 자이다.

 

好人之所惡하며 惡人之所好를 是謂拂人之性이라 菑268)(災)必逮269)夫身이니라.

남의 미워하는 바를 좋아하며, 남의 좋아하는 바를 미워함, 이를 일러 사람의 성품을 어긴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는 재앙이 반드시 그 몸에 미칠 것이다.

 

拂은 逆也라 好善而惡惡은 人之性也니 至於拂人之性이면 則不仁之甚者也라 自秦誓至此는 又皆以申言好惡公私之極하여 以明上文所引南山有臺, 節南山之意라.

拂은 거스름이다. 善을 좋아하고 惡을 미워함은 사람의 性이니, 사람의 性을 어김에 이르면 不仁이 심한 자이다.『秦誓』로부터 여기까지는 또 모두 좋아하고 미워하기를 公으로 함과 私로 함의 지극함을 거듭 말하여, 위 글에 인용한 ‘南山有臺’와 ‘節南山’의 뜻을 밝힌 것이다.

 

是故로 君子有大道하니 必忠信以得之하고 驕270)271)以失之니라.

이러므로 君子는 큰 道가 있으니, 반드시 忠과 信으로써 얻고, 교만함과 방자함으로써 잃는다.

 

君子는 以位言之라 道는 謂居其位而修己治人之術이라 發己自盡이 爲忠이요 循物無違가 謂信이라 驕者는 矜272)高요 泰者는 侈273)274)라 此因上所引文王康誥之意而言이라 章內에 三言得失而語益加切하니 蓋至此而天理存亡之幾決矣로다.

君子는 지위로써 말한 것이다. 道는 그 지위에 居하여 자신을 닦고 남을 다스리는 방법을 이른다. 자기 마음을 발하여 스스로 다함을 忠이라 하고, 남을 따라 어김이 없음을 信이라 이른다. 驕는 자랑하고 높은 체 함이요, 泰는 사치하고 방자함이다. 이는 위에 인용한「文王詩」와「康誥」의 뜻을 인하여 말씀한 것이다. 이 章 안에 得失을 세 번 말하였는데 말이 더욱더 간절하니, 이에 이름에 天理가 보존되고 멸망되는 기틀이 결판난다.

 

生財有大道하니 生之者衆하고 食之者寡하며 爲之者疾하고 用之者舒하면 則財恒足矣리라.

재물을 생산함이 큰 道가 있으니, 생산하는 자가 많고 먹는 자가 적으며, 하기를 빨리 하고 쓰기를 느리게 하면, 재물이 항상 풍족할 것이다.

 

呂氏曰 國無遊民이면 則生者衆矣요 朝無幸275)位면 則食者寡矣요 不奪農時면 則爲之疾276)矣요 量入爲出이면 則用之舒矣라 愚按 此因有土有財而言하여 以明足國之道在乎務本而節用이요 非必外本內末而後財可聚也라 自此以至終篇이 皆一意也라.

呂氏(呂大臨)가 말하였다. “나라에 노는 백성이 없으면 생산하는 자가 많은 것이요, 朝廷에 요행의 지위가 없으면 먹는 자가 적은 것이요, 농사철을 빼앗지 않으면 하기를 빨리 하는 것이요, 수입을 헤아려 지출을 하면 쓰기를 느리게 하는 것이다.” 내가 상고해 보건대, 이는 有土와 有財를 인하여 말씀해서, 나라를 풍족히 하는 道가 本業(農業)을 힘쓰고 쓰기를 절약함에 있는 것이요, 반드시 근본을 밖으로 하고 末을 안으로 한 뒤에 재물이 모이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이로부터 끝 篇까지는 다 똑같은 뜻이다.

 

仁者는 以財發身하고 不仁者는 以身發財니라.

仁者는 재물로써 몸을 일으키고, 不仁한 자는 몸으로써 재물을 일으킨다.

 

發은 猶起也라 仁者는 散財以得民하고 不仁者는 亡身以殖貨라.

發은 起와 같다. 仁者는 재물을 흩어서 백성을 얻고, 不仁한 자는 몸을 망쳐서 재물을 증식한다.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니 未有好義요 其事不終者也며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니라.

윗사람이 仁을 좋아하고서 아랫사람들이 義를 좋아하지 않는 자는 있지 않으니, 아랫사람들이 義를 좋아하고서 그[윗사람] 일이 끝마쳐지지 못하는 경우가 없으며, 府庫의 재물이 그 윗사람의 재물이 아닌 경우가 없는 것이다.

 

上好仁以愛其下하면 則下好義以忠其上이니 所以事必有終而府277)庫之財無悖出之患也라.

윗사람이 仁을 좋아하여 그 아랫사람을 사랑하면, 아랫사람들이 義를 좋아하여 그 윗사람에게 충성하니, 이 때문에 일이 반드시 마침이 있고, 府庫의 재물이 어그러지게 나가는 폐단이 없는 것이다.

 

孟獻278)子曰 畜279)馬乘은 不察於鷄豚280)하고 伐冰之家는 不畜牛羊하고 百乘之家는 不畜聚斂281)之臣하나니 與其有聚斂之臣으론 寧282)有盜臣이라하니 此謂 國은 不以利爲利요 以義爲利也니라.

孟獻子가 말하기를 ‘馬乘을 기르는 자는 닭과 돼지를 기름에 살피지 않고, 얼음을 쓰는 집안은 소와 양을 기르지 않고, 百乘의 집안은 聚斂하는 신하를 기르지 않으니, 聚斂하는 신하를 기를진댄 차라리 도둑질하는 신하를 두라.’ 하였으니, 이것을 일러 ‘나라는 利를 이익으로 여기지 않고 義를 이익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孟獻子는 魯之賢大夫仲孫蔑283)也라 畜馬乘은 士初試爲大夫者也요 伐冰之家는 卿大夫以上喪祭用冰者也요 百乘之家는 有采284)地者也라 君子寧亡己之財언정 而不忍傷民之力이라 故로 寧有盜臣이언정 而不畜聚斂之臣이라 此謂以下는 釋獻子之言也라.

孟獻子는 魯나라의 賢大夫인 仲孫蔑이다. 馬乘을 기른다는 것은 士가 처음 등용되어 大夫가 된 자이다. 伐冰之家는 卿大夫 이상으로 初喪과 祭祀에 얼음을 쓰는 자이다. 百乘之家는 采地를 가지고 있는 자이다. 君子는 차라리 자기의 재물을 잃을지언정 차마 백성의 힘을 상하게 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차라리 도둑질하는 신하를 둘지언정 聚斂하는 신하를 기르지 않는 것이다. 此謂 이하는 獻子의 말을 해석한 것이다.

 

長國家而務財用者는 必自小人矣니 彼(爲善之)小人之使爲國家285)면 菑害並至라 雖有善者라도 亦無如之何矣리니 此謂 國은 不以利爲利요 以義爲利也니라.

국가에 어른이 되어 財用을 힘쓰는 자는 반드시 小人으로부터 시작되니, 저 小人으로 하여금 국가를 다스리게 하면 天災와 人害가 함께 이르러, 비록 잘하는 자가 있더라도 또한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나라는 利를 이익으로 여기지 않고, 義를 이로움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彼爲善之此句上下에 疑有闕286)文誤字라.

‘彼爲善之’ 이 句의 위아래에는 의심컨대 闕文이나 誤字가 있는 듯하다.

 

自는 由也니 言由小人導之也라 此一節은 深明以利爲利之害하여 而重言以結之하니 其丁寧之意切矣로다.

自는 말미암음이니, 小人이 인도함으로 말미암음을 말한 것이다. 이 한 節은 利를 이익으로 삼는 害를 깊이 밝히고, 거듭 말씀하여 맺었으니, 그 丁寧한 뜻이 간절하다.

 

右는 傳之十章이니 釋治國平天下하니라.

右는 傳文의 10章이니, 治國 · 平天下를 해석하였다.

 

次章之義는 務在與民同好惡而不專其利하니 皆推廣絜矩之意也라 能如是면 則親賢樂利287)가 各得其所하여 而天下平矣리라.

이 章의 뜻은 힘씀이 백성들과 더불어 좋아하고 싫어함을 함께 하고 그 이익을 독차지하지 않음에 있으니, 모두 絜矩의 뜻을 미루어 넓힌 것이다. 능히 이와 같이 하면 親 · 賢과 樂 · 利가 각각 그 곳을 얻어서 천하가 平하게 될 것이다.

 

凡傳十章에 前四章은 統論綱領指288)289)요 後六章은 細論條目工夫라其第五章은 乃明善之要요 第六章은 乃誠身之本이니 在初學에 尤爲當務之急이니 讀者不可以其近而忽290)之也니라.

傳文 열 章에 앞의 네 章은 綱領의 指趣를 통합하여 논하였고, 뒤의 여섯 章은 條目의 공부를 세세히 논하였다. 제 5章은 바로 善을 밝히는 要體요, 제 6章은 바로 몸을 성실히 하는 근본이니, 初學者에 있어서 더욱 마땅히 힘써야 할 急先務가 되니, 읽는 자들은 淺近하다고 하여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11년 5월 16일 完. 張光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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